매일신문

"대구를 젊음의 도시로" 김만제 이사장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지난 1년을 대구에서 살면서 정말 대구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은 대구의 GRDP(지역내 총생산)가 전국 16개 광역지자체 가운데 꼴찌라고 하지만, 소득이 3만, 4만달러가 됐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그때는 도시의 공업적 비중보다 문화. 서비스 기능이 훨씬 중요하게 부각될 것입니다. 대구는 당연히 서울, 부산에 이은 3대 도시로서의 명성을 되찾을 것입니다."

◆ 대구는 뭘 먹고 사나?

낙동경제포럼 김만제 이사장(71, 대구시 경제고문, 산학경영연구원 이사장)은 단임(16대)으로 정치를 접고 고향에 묻혀살면서 오직 한가지만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고향 대구를 선진화된 도시로 꾸며 나갈 수 있을까. 전란에서 우리 국토를 지킨 낙동강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

비대화된 서울에 이어 충청권은 행정수도 이전으로 대대적인 발전계획이 수립돼있고, 인천과 부산은 자유무역지대로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전남은 서해안 개발과 관광지화를 위한 J프로젝트에 무려 25조의 민. 관자금을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자, 큰일났습니다. 대구는 뭘 먹고 살아야하겠습니까."김 이사장은 지역 지도층의 지역발전에 대한 확신과 비전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 경제전망은 정확한 예측이 필요

"이삽십년 후 소득이 아주 높아졌을 때의 대구모습을 그려가는 장기적인 마스트플랜이 중요합니다. 너무 먼 장래여서 피부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발전해나가는 큰 틀을 생각하고 도시의 발전계획을 세워야합니다."

남덕우, 이승윤과 함께 서강학파의 빅3 가운데 한명으로, 재경부 장관, 부총리를 지내면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끈 김이사장은 제2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1968~1972)을 세우던 시절의 교훈을 되새겨본다.

"2차 계획을 세우던 1967년에 미국 컨설팅회사가 80년대가 되면 여가를 즐기는 마이카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자 모두들 비웃었어요. 당장 때거리도 없는 마당에 무슨 마이카냐고 말도 되지 않는 소리 집어치워라고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이처럼 경제 전망은 정확한 예측이 필수입니다. "

◆ 20년~30년 후 대구는 역동적인 도시

"1인당 GNP가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가면 대구는 분명 전통과 문화가 살아있는 아름답고 역동적인 도시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 확신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미 서울시는 청계천복원과 시청 앞 잔디광장조성, 대중교통 개선 등을 통해 '동양의 파리'로 비상하고 있다. "대구도 산업기반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도시형 지식산업을 키우면서, 대구가 지닌 교통요충지로서의 기능성과 문화, 서비스 도시로서의 최적성을 살려가자는 것입니다."사실 뉴욕이나 파리는 굴뚝없이 세계 경제의 심장부, 세계 예술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 중앙정부 의존도, 민간 규제도 하지 말라

"아직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도시개발이나 경제활성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지역 활성화는 어디까지나 민간참여로 이뤄져야합니다. 그저 민간이 창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은 뒷받침하고, 인센티브 제공하면서 각종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주는 것으로 그쳐야합니다. "

김이사장은 대구가 지나치게 중앙지원을 기다리고 있으며, 개발문제를 대구시가 다 껴안고 있어 템포가 늦어진다고 지적한다. 민간이 앞장서고, 시가 지원하는 속도감과 창의성을 동시에 지니는 형태로 뒤바뀌어야한다는 말이다. "도시개발은 민간 디벨로퍼가 주도해야합니다. 난개발이나 환경문제는 조절해야겠지요.". 이미 서울시 재개발이나 인천자유무역지대 조성은 다 디벨로퍼가 주도하고 있어 대구도 3공단개발이라든지, 봉무단지 개발을 그렇게 디벨로퍼에게 맡겨야한다고 그는 보고 있다.

◆ 민간 디벨로퍼가 도시개발 주도

민간 디벨로퍼가 지역개발에 성공한 사례는 외국에서는 너무 많다. 기자도 작년에 미 국무성의 초청으로 미국의 지역혁신 현장을 둘러본 결과 혁신은 민간에 의해 폭넓게 주도되고 있는 것을 목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보스톤의 루트128 프로젝트. 아주 젊고 똑똑한 부동산 디벨로퍼 1명이 도시 중앙을 통과하는 고속도로 양옆을 따라 대규모 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역혁신에 성공한 모델케이스가 바로 루트 128 프로젝트이다. 한 디벨로퍼의 도시개발프로젝트에 대해서 지방정부가 딴지를 걸기는 커녕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여기에 민간인들이 모여서 '위대한 보스톤 만들기' (The Great Boston) 운동을 펴고 있다.

"민간이 주도하는 '더 그레이트 보스톤' 운동처럼 도시가 발전하는 것에 대해서 전적으로 공감합니다"고 의사를 표현한 김 이사장은 "이제 세상이 달라졌고, 공무원들이 책상에 앉아서 줄만 쳐서 개발을 주도하던 시대는 끝났다"면서 시의 독주로 경제정책이 시민과 동떨어지도록 규제돼서는 안된다고 쓴소리를 한다.

◆ 섬유클러스트로 지역섬유 경쟁력 살려야

"대구가 역동적이지 못하니 자녀들은 다 밖으로 나가고, 경제는 바닥을 기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의원 시절, 달서구의 박종근의원(한나라당)과 함께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의 입안과 예산확보에 큰 성과를 냈던 김 이사장은 이제 대구활로의 한 방편으로 섬유클러스트 조성에 힘을 쏟고 있다.

"지역에서 고용과 생산의 35%를 차지하는 섬유업계가 경쟁력을 갖추도록 구조를 조정하고, 기술개발과 디자인 패션성을 높이는 작업을 할 것입니다. 마케팅능력도 높여야하구요. 누가 시장이 되든, 섬유클러스트는 계속할 수 있도록 지역원로들과 합의하고, 현장업체들도 자부담도 하는 방식으로 클러스트를 조성해나갈 것입니다. 우선 300~400개 섬유 선도기업도 지정해야겠지요."

◆ 대구시민들이여, 밖을 보고 삽시다

섬유클러스트 조성과 관련, 김이사장은 오는 22일 대구에서 4차 회의를 연다. 좀더 윤곽이 정리되면 곽성문의원(한나라당, 남구, 국회 산자위소속)이 섬유특별법으로 의원입안키로 보조를 같이하고 있다.

"R&D도 중요하지만 당장 대구가 먹고 살려면 1만5천여개에 이르는 중소섬유업체의 경쟁력을 높여야합니다. 밀라노프로젝트에 목맬 것이 아니라 섬유클러스트를 통해 섬유업계의 경쟁력이 스스로 높아지도록, 싱크탱커들이 도와주어야합니다. "김이사장은 대구사람들이 앞서가는 서울을 보고, 벤치마킹하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 대구 밖을 똑바로 봐야 대구의 경쟁력이 생긴다.

◆ 아시아 락&팝 페스티벌 준비중

"개방적이면서 국제화가 된 열린 도시라야 지속발전 가능하다"고 보는 김 이사장은 대구의 또다른 변신을 꿈꾸고 있다. 아시아의 젊은이들을 대구로 불러모으는 락&팝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다.

"대구는 새로운 도시로서의 변신에 소홀, 젊은이들이 떠나는 도시가 되어버렸습니다. 가수 보아를 포함한 아시아권 대중가수들을 대구로 불러들여 젊은 기운을 일으켜여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맨파워가 대구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믿는 김 이사장은 사림의 후예들이 모여사는 '선비 도시' 대구의 기질처럼 사리사욕보다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는 21세기형 성향을 잘 살려 조금만 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영 올드

경상도 사람이긴 하지만 꽤 자상한 편인 김 이사장은 나이를 떠나 상당히 진취적이고 젊은 사고를 지닌 소위 영-올드(young-old). 소 여물을 끓여먹을 정도로 적빈(赤貧)한 환경을 특유의 부지런함과 열정으로 극복한 부모님은 어린 아들에게 동네어른을 모셔서 한학을 가르친 열성파로 나중에 덕산탕을 운영했다.

공부하다가 책이 구겨지면 다려서 읽을 정도로 책을 소중하게 여긴 김 이사장은 거의 음치 수준이지만 마리아 칼라스를 닮아서 선이 굵은 서구형 미인인 최구혜 여사(63)와의 사이에 삼남매를 두었다. 장녀 지영(40)씨는 남편 윤종수(41)씨와 나란히 판사이며, 장남 성우(39)씨는 (주)엔토미디어 재무이사이다. 차녀 지수(36)씨는 김용성(40)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원과 부부로 현재 美 미시건대 교육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 맛에 대해서는 일가견

"부끄럽습니다만, 저는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매사에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노력을 게을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동안 정부 관료로, 또한 기업체 총수로, 금융업계 수장으로 각종 정책적 결단을 내리면서 폭넓은 경험을 하고, 다양한 경륜을 지닌 김 이사장은 '차기 대구시장감'이라는 일각의 얘기를 들려주자 '이 나이에 무슨'이라며 손사레를 치며 말도 꺼내지 말라고 자른다. 그런 그는 맛에 대해 일가견을 지녔다. 자녀들이 어릴때는 일요일에 노릇노릇하게 볶음밥도 자주 해준 김 이사장은 아직도 제사후 남은 생선전 나물전으로 찌개를 일품으로 끓인다. 일 외에는 애정을 두는 곳이 별로 없어 딸들로부터 일중독이 아닌가 여겨질 때는 줄담배를 사양치 않은 헤비 스모커였으나 요즘은 담배를 줄였다.

◆ 동양적 품성과 서구적 개방성 동시에 지녀

한학공부를 통해 순리를 따르고 사는 동양적 인간관과 유학을 통해서 합리적인 사고와 지구촌의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을 동시에 갖춘 김 이사장은 삼덕초등, 경북중고, 미 덴버시 미주리대 박사. 미주리주립대 조교수(63년), 서강대 교수(70년-75년) 한국개발연구원(KDI)원장(71년-82년) 한미은행장(82년-83년) 재무부장관 경제부총리(86-87년) 삼성생명보험회장(91-92년) APEC 저명인사그룹한국대표(93-94년) 포철회장(94-97년) 고려대석좌교수(97년) 16대 국회의원(2000년-2004년)을 지냈다. 저서는 '2010년 선진첨단 대구건설' 등이 있다.

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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