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늦둥이 아빠 배진덕의 얼렁뚱땅 살림이야기-늙은 아버지의 자격지심

긴 겨울이 끝나고 따스한 봄이 오니 이 늙은(?) 아버지의 가슴에도 춘심이 이나 봅니다. 굳이 아이가 밖에 나가자고 조르지 않아도 퇴근을 하면서 오늘 저녁엔 큰놈 데리고 밖에 산책이나 가야지 하는 마음이 생기니까요. 얼마 전 제가 나가는 모임에서도 봄맞이 가족동반 야유회를 가자고 부추겨 큰 마음먹고 용인까지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산책이나 가족동반 야유회는 너무 어린 둘째 딸애와 아내는 집에 남겨두고 저랑 큰놈만 움직이게 됩니다. 다분히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산책과 야유회를 다닌 지 벌써 2년이 됐네요.

사실 저는 자세히 보면 동안이지만 언뜻 보면 머리도 많이 빠지고 똥배도 좀 나와 실제 나이를 가늠하기 힘듭니다. 집 주변을 산책하다가 약국이나 목욕탕에 가면, 일하시는 분들이 제 큰놈을 보고 "할아버지하고 왔구나"하며 말을 겁니다. 혹은 직접 제게 큰놈을 가리키며 "아이 위가 딸인가요, 아들인가요. 아이가 막둥이인가 보죠" 라고 묻기도 합니다. 사실 이럴 때면 저는 순간 부끄러움을 느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제 아들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냥 흘리면서 상황을 모면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마다 큰놈한테 미안한 생각도 들지요.

지면을 빌려 장사하시는 분들께 부탁드릴게요. 비록 할아버지와 손자가 가게에 들르더라도 "막내아들이에요?"라고 물으시면 듣는 할아버지도 기분이 좋아지겠지요. 반면 제 경우에 "할아버지하고 왔구나" 라고 하면 당연히 아버지로서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립서비스라고, 장사하시는 분들은 말이라도 이런 점에 신경을 써주시면 좋지 않을까요.

지난 식목일 제가 큰놈만 데리고 용인에 갔을 때도 우리집 사정을 아는 이들은 연유를 이해했겠지만, 처음 만난 가족들 중엔 아마 저를 홀아비로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놀이공원에 다다르자 모임 총무는 저에게도 자유이용권 경비를 요구했으나 저와 큰놈이 이용할 놀이기구는 거의 없어 저는 큰놈을 유모차에 태운 채 놀이공원을 배회하기만 했지요. 그런데 큰놈이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응가'를 하여 순간 당황스러웠습니다. 기저귀 가는 곳에 들르니 모두 젊은 아줌마밖에 없어 다시 밖으로 나와 벤치에서 큰놈의 기저귀를 갈아주었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이들은 아마 제가 이혼하고 면접교섭권에 의해 만나 하루 큰놈과 놀아주는 것으로 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자격지심에 진땀을 뺐습니다.

이러니 행복하려면 그 나이에 맞게 살라는 말이 생겼나 봅니다. 애를 보다 보면 가끔씩 제가 애들을 너무 세상에 늦게 불렀구나, 애들이 철들면서 친구 아버지보다 늙은 이 아버지를 부끄럽게 생각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럴수록 애들이 저의 다른 점을 보고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제 자신을 연마해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변호사 jdb2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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