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이 하고 싶어 미치겠다"

"죽어도 좋으니 일만 하게 해달라." "산재보험도 필요없고 최저임금에 못 미쳐도 관계없다. 용돈만 줘도 좋다."

노인들이 일을 하고파 아우성(?)이다. 이들은 멀쩡한 정신과 육체를 갖고 있으면서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너무 높기만 하다. "청년실업도 해소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노인들까지…."

18일 오후 대구성서산업단지 관리공단 2층 회의실에서 열린 관리공단과 달서시니어클럽 간의 '사회공헌 협약식'은 이 같은 분위기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당초 참석자들은 이 협약이 이뤄지면 65세 이상 노인들도 당당히 취업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이날 협약서에는 성서공단 측이 노인일자리 창출을 위해 적극 협조하고 주변 업체에 노인고용을 권장하겠다는 정도의 두루뭉술한 말만 있었다. 실질적으로 단 1명이라도 고용하겠다는 문구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를 알게 된 30여 명의 노인들은 엉어진 말들을 내뱉으며 적잖은 불만을 드러냈다. 교육계에 30여 년간 몸담았다는 박찬서(67·달서구 상인동)씨는 "노인들에게 희망을 갖게 한 뒤 도리어 절망만 안겨주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닌 구체적인 약속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여두용 성서관리공단 이사장과 류우하 달서시니어클럽 관장은 향후 지속적인 만남을 갖고 '공단내 노인일자리 찾기 캠페인', '노인들만 일하는 공동작업장 개소', '농수산물 가공 및 비닐하우스 부품 조립' 등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류우하 관장은 "현실적으로 노인들의 일자리를 직접 찾아주기는 어렵다"면서 "하지만 고령화사회를 넘어 고령사회를 앞두고 노인들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생산공장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노인들은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천대받고 있는 사실에 분통을 터트렸다.

7년 전 대구패션기능대학 관리부장으로 퇴직했던 이영길(68·달서구 성당동)씨는 "몇 군데 이력서를 내도 감감무소식"이라며 "공단에서는 산재보험 등 각종 법적, 제도적 이유를 들어 65세 이상 노인은 아예 뽑지도 않는다"고 했다.

사실 노인취업 문제는 행정기관에서도 취업률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가 없을 정도로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전국 7개 광역시, 경기도와 함께 노인일자리 박람회를 열었지만 실제 취업한 노인은 거의 없고 민간공단에서 정식 채용한 사례는 손꼽을 정도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가정복지회 정재호 사무총장은 "선진국에는 톨게이트 직원, 정원관리사 등 노인들만 일할 수 있는 직종이 있다"며 "성서공단 내 2천300여 개 회사에서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1명씩만 고용해도 노인실업 해소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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