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효자산품 차부품 '성장 질주'

기술·가격 경쟁력… "기회가 오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외국인 투자유치 목표 업종 가운데 가장 앞자리에 자동차부품업을 두고 있다. 대구·경북의 뛰어난 물류 입지, 우수한 기술인력 등이 차부품업체가 성장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는데다 무엇보다 역내 차부품업체 성장세가 외국 차부품업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차부품업은 향후 10, 20년간 꾸준한 성장이 가능한 미래산업이 될 수 있을까?

◆초고속 부품을 달다

역내 최대 차부품업체 가운데 하나인 에스엘. 자동차 헤드램프를 주력으로 하고 있는 이 회사는 최근 10년새 매출이 5배 정도 성장, 계열사 포함 연간 매출이 1조 원대에 이르는 우량기업으로 올라섰다.

꼭 10년 전 이 회사는 북구 노원동 3공단에 연면적 4천81평의 공장터를 두고 있었지만 이제는 본사·공장(경산 진량공단) 연면적이 1만2천688평에 이르러 3배 이상 커졌다. 10년 전 에스엘의 국내 계열사는 3개였지만 현재 12개로 4배 늘었고 미국·중국·인도 등 해외 생산기지도 6개(1995년 당시 1개)로 늘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회사는 국내에서도 헤드램프 분야 1위라 할 수 없었다. 경기도 안산에 본사를 둔 삼도기전이 앞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에스엘은 연구개발에 총매출의 6%가량을 투자, 품질을 향상시키면서 1999년 선두업체인 삼도기전을 아예 인수해버렸다. 현재 헤드램프 분야 세계 7위권으로 올라섰고 몇 년 안에 '넘버 3' 진입이란 목표로 달리고 있다. 세계 최대 완성차업체인 GM이 선정하는 최우수 협력업체로 지난해까지 8년 연속 선정돼 아시아권 차부품업체로는 사상 최초의 기록을 세우며 글로벌 품질을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에스엘뿐만 아니다. 대구경북권 차부품업체 가운데는 세계적 종합차부품업체로 올라서고 있는 한국델파이를 비롯해 평화산업, 평화정공, 화신, 경창산업, 동원금속, 동해전장 등 세계시장에서 글로벌 경쟁을 펼치고 있는 '쟁쟁한 기업'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평화산업의 경우, 10년 전에 비해 매출이 3배 이상 성장하며 본사와 계열사 1곳이 대기업으로 분류됐다. 평화정공도 부품업계의 거대조류인 모듈(단품이 아닌 차부품 덩어리)화에 성공, 매년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험로도 잘 넘었다

2000년 당시 대우차 납품비중이 전체 매출의 절반에 이르렀던 동원금속(경산 진량공단). 이 회사는 2000년 대우차 부도사태 당시 큰 위기를 맞았다. 대우차 부도로 전체 매출(2000년 당시 1천400여억 원)의 20%에 육박하는 220여억 원의 정리채권이 발생하면서 큰 피해를 본 것. 때문에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내리 3년 동안 적자를 봤다. 하지만, 동원금속은 3년 만에 다시 일어섰다. 2003년 흑자로 탈바꿈하면서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한 것.

아직 실적발표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지난해에도 흑자달성은 물론, 전년에 비해 큰 성장을 한 것으로 회사 측은 보고 있다. 동원금속은 올해 '자동차의 나라' 미국 앨라배마에 공장을 설립, 가동에 들어가 본격적인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대우차 납품비중이 컸지만 위기를 맞은 이후 매출 다변화에 치중, 위기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며 "결국 어느 완성차업체에나 통할 수 있는 기술 축적이 위기 탈출의 열쇠"라고 했다.

한국델파이는 위기의 강도가 더 심했었다. 이 회사는 대우차 부도 사태 당시 무려 2천여억 원의 부실채권을 떠안았다. 파산 직전이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쓰러지지 않았다. 2000년부터 내리 3년 동안 적자를 봤지만 2003년 흑자로 전환한 뒤, 2004년에는 1984년 회사 창립 이래 최대의 매출(8천400여억 원)을 올린 것은 물론, 500여억 원의 이익을 냈다.

이 회사 역시 부활의 밑천은 기술력이었다. 회사 주인이 바뀐 GM대우가 한국델파이의 기술력을 믿고 부품 발주를 계속했고, 현대차, 쌍용차, 르노삼성차 등으로의 매출 다변화도 기술력 때문에 가능했다.

이 회사는 세계 최대의 차부품업체인 미국 델파이가 전세계 171개 사업장 및 42개 합작회사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품질테스트에서 올해 최고상인 '플레티넘상'을 2년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 플레티넘상은 불량률 0을 기록한 업체에게만 주고 있다. 차부품업계 관계자는 "지역 차부품업체의 기술력도 뛰어나지만 지리적으로 최근 몇 년간 큰 성장세를 보인 현대차 울산공장과 가까워 지역 업계가 이점을 누린 부분도 있다"고 했다.

◆계속 잘 달릴까?

역내 차부품업계 CEO들은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 앞서 달리는 미국·일본·독일을 따라잡아야 하는 것은 물론, 중국 등의 후발국 추격도 따돌려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라는 것이다.

지기철 한국델파이 대표는 "중국의 추격이 만만치 않다"고 경계했다. 그는 10년 후에 역내 차부품업계가 지금과 같은 성장세를 나타낼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며 모든 것을 다 바꾼다는 기술혁신 노력 없이는 2, 3년 후를 기대하기도 힘들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역내 차부품업체 관계자들은 국내 완성차 업체 위주의 납품 관행에서 탈피, 직수출 비중을 늘리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대구상의의 용역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대구지역 부품업체 724개 사 가운데 직접수출을 하고 있는 부품업체는 전체의 6.6%(48개 사)에 머물고 있다. 1차밴더는 43.5%(20개 사)로 비교적 직수출 업체가 많지만 2차밴더는 382개 사 가운데 5%(19개 사)에 불과하다.

문인완 대구상의 차부품 담당 과장은 "1차밴더에서도 직수출이 늘어나고 있지만 진출지역 언어에 능통한 기술마케팅 인력이 부족, 애로를 겪고 있다"며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부터는 잘 파는 기술, 즉 기술 마케팅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차부품업계 한 관계자는 "전세계 완성차업체들이 기존에 거래하던 부품업체에서 완전히 탈피,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값싼 가격에 적정한 품질을 보장하는 부품 조달 체계를 갖추면서 최근 대구경북지역 차부품업체에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며 "차부품업계는 행정기관에 특별한 지원을 요구하지 않지만 우수한 인력이 밀집한 대구권에 공장을 제때 지을 수 있도록 공장용지 공급만은 절실하다"고 했다.

한편, 차부품업체 비중의 증가는 대구지역의 경우, 전체 제조업의 쇠퇴 때문에 부각된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으며 위험분산을 위해 공장용지 확대를 통한 제조업 비중 확대는 물론, 업종 다양화도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사진: 10년 새 5배 이상 성장, 글로벌 기업으로 떠오른 에스엘의 조업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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