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그 건물

한 40분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입구에 있다.

나의 차 뒤로도 긴 행렬이 마치 솔벌레의 행진처럼 꾸불텅꾸불텅 움직이며 이어지고 있다.

경적 소리 하나 없다.

희한한 일이다.

이렇게 많은 차들이 줄을 지어 움직임에도 경적 소리 하나 없다는 것은. 아마도 모두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니면 '교양스럽게' 움직인다는 것의 의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눈을 들어 허공을 바라본다.

바람이 부는지 구름들이 마악 흩어지는 흐린 공중에는 20층되는 높은 건물이 마치 꿈의 성처럼 푸르게 솟아 있다.

이 건물은 멀리서 보아도 푸름이 몇 겹으로 둘러싸인 것 같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푸른 에메랄드 성을 '달러'를 풍자하는 것으로 이해한 어떤 사람의 글이 생각난다.

소녀가 걸어가는 누런색 벽돌길은 금을 상징하는 금길이고…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 푸른 성에 사는 마법사는 실은 전혀 힘이 없는, 마술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이름만 그럴 듯한 마법사였다.

미국의 문학 이론가인 프레데릭 제임슨은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인 존 포트먼의 보나벤추어 호텔(로스앤젤러스)의 거대한 반사 유리벽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유리벽이 외부의 도시를 거부하는 방법은 반사 선글라스에서 그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반사 선글라스는 상대방이 자신의 눈을 볼 수 없도록 만듦으로써 타자에 대한 어떤 공격성과 우위를 획득한다.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유리 표면은 보나벤추어를 이웃 건물들로부터 장소가 존재하지 않고 독특하게 분리시킨다.

즉 그것은 심지어 외면이라고도 할 수도 없는데 왜냐하면 호텔의 외부벽들을 보려고 할 때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호텔 그 자체가 아니라 단지 호텔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의 뒤틀린 영상들일 뿐이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있다.

과연 그렇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 건물이 주는 말도 그러니까, 이 아름다운 듯한 고층 건물의 주언(主言)은 분리이며, 나아가 거부이기 때문이다.

'나는 특별하다, 고로 여기 들어오는 당신도 특별하다'라는 묵시적인 말, 그러면서 모르는 사이에 도시의 주변과 나를 분리시키고, 그러므로 특별하지 않은 당신은 거부한다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내가 교양스럽지 않게 굴면 되는가, 그러니 이렇게 많은 차가 기다림에 차서 움직이면서 시끄러운 경적소리 하나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건물의 정면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전언하는 것 같기도 하고, 두 사람이 사랑의 말을 주고 받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그림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 도시와는, 이 도시의 현대적이며 모더니즘적인 모습과는 상관없는, 옛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드디어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입구로 들어간다.

드디어 도달한 지하, 어찌어찌 차를 주차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홀에 이른다.

커다란 원주가 앞을 가로막는다.

프레데릭 제임슨은 또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에 보이는 필로티(건물의 높은 지주들)는 새로운 이상향적인 모더니즘의 공간을 품위 없고 타락한 도시 구조들로부터 극단적으로 분리시켜 그것을 명백히 거부하는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에스컬레이터와 엘레베이터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말을 하고 있다.

'이 '인간운반기(디즈니로부터 빌려온 포트먼 자신의 용어)'들은 단순한 기능과 공학적 구성요소들 이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자신을 향해 지향되어 있으며 자신의 문화적 생산을 스스로의 내용으로 삼는 경향이 있는, 모든 현대 문화의 자기 지시성을 더욱 변증법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현대는 복잡한 세대이다.

그러나 문제는 더욱 복잡한 데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많은 현대적인 것들, 차의 속도들, 날이면 날마다 바뀌는 습속들 속에서 아직 우리는 조선시대적인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쉽게 말해 '보수'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보수가 아니다.

폐쇄적인 것이며, 경직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것들은 경직된 폐쇄의 보수성에 빠져 있으면서,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당연히 양장들을 하고 있다.강은교 동아대 국문과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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