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내신 전쟁'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육열은 세계가 알아준다. '기러기 아빠'가 대변하듯이, 자녀를 잘 되게 하기 위한 부모들의 희생은 가히 눈물겨울 정도다. 그러나 대학 입시 제도가 너무 자주 바뀌는 바람에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은 언제나 갈팡질팡이다. 정권이 바뀌거나 교육부 장관이 달라질 때마다 단골로 내놓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입시 제도이며, 또 언제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자유로워질 날이 없을 지경이다. 그래서 우리 교육에서 '백년대계'라는 말은 사라진 지 오래라는 한탄이 나온다.

◇ 올해 고교 1학년부터 적용되는 내신 위주의 새 대입 제도를 앞두고 일선 고교 교육 현장이 벌써 혼란 속이라는 소문이 들린다. 그 부작용은 특히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 있는 특목고'자립형 사립고 등에 심하다. 내신 성적 때문에 이들 학교 학생들은 일반고로, 일반고에선 실업고로, 좋은 학군에선 더 못한 학군으로 연쇄 이동할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 교실 풍경도 날로 삭막해지고 있다. 내신 때문에 짝꿍마저 경쟁자가 돼 버리고, 서로 노트까지 빌려주지 않는 분위기로 치닫는다. 그런가 하면, 전학 온 학생에겐 기존 재학생들이 자기 내신 성적을 끌어내린다는 생각 탓으로 따돌리기 일쑤이며, 심한 경우 정신적인 공황 현상이 나타나고, 가출하는 학생마저 없지 않을 정도라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 내신 위주의 대입 제도는 분명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도입된 새 제도다. 하지만 과연 그런 기대를 할 수 있을까. 벌써 심각한 상황들이 연출되고 있는 바와 같이, 교육 정상화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쪽으로 치닫게 하고 있는 꼴이지 않은가. 이러다간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심리적 박탈감이 확산될 게 뻔하고, 학부모들까지 가세한 집단 반발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 내신제의 혼란은 그뿐 아니다. 대학들의 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과목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형편이다. 더구나 고교 3년 동안 12차례의 중간고사와 학기말고사를 신경 써야 하는 부담은 또 어떤가. 단 한 차례의 수능시험만으로 인생이 좌우되는 현행 제도도 문제지만, 고교 시절을 학교 성적의 노예 상태로 살아야 하는 학생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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