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사람 남은 사람
안동댐이 축조되면서 물에 잠긴 땅은 51.5㎢. 조상들처럼 그 땅에 대를 이어 뼈를 묻으려다 생각지도 못한 망향가를 불러야 했던 수몰민은 안동군 6개 면 34개 이(里)에 걸쳐 3천212가구 2만597명에 이르렀다.
갈 곳이 딱히 정해진 사람들은 손꼽을 정도였다. 대부분은 물길과 바람에 몸을 맡긴 부초처럼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흩어져 떠났다.
고향을 등지는 마음은 얼마나 애절했을까. "집 뒤안 10척 감나무 2그루가 물이 들면 썩어 스러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머님 곶감 만드시던 모습이 눈에 어려 차마 베지 못하고 고향집을 떠났다"는 김후섭(65'안동시 태화동)씨. 그는 "30년이 흘러 이제 무뎌질 때도 된 것 같은데 두고 온 고향 초막은 수시로 떠오르고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언젠가는 되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꿈을 꾼다"며 사무치는 향수를 되뇌었다.
▨쇠락한 이주단지
18일 정오 무렵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속칭 서부이주단지. 지나다니는 차도, 사람도 없어 단지 내 신작로는 휑하니 비어 있었다. 상가들도 한집 건너마다 셔터가 내려져 적막감마저 감돈다.
정류장 옆 슈퍼마켓에서 만난 윤정오(73)씨는 "마을에 사람이 없는데 한적한 게 당연하지 않으냐"며 "어쩌다 오는 손님 맞으려고 종일 가게를 지키는 게 따분하지만 이젠 이골이 났다"고 했다.
1975년 완공된 이곳 서부단지는 당시 600여 가구 2천여 명의 수몰민들이 새 보금자리를 틀었지만 지금은 213가구 524명만 남았다. 일할 터전을 잃은 소작농부터 형편이 어려운 순서대로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 주민 3분의 1은 아직 농사를 짓지만 전부 영세농이고 나머지 노동력이 있는 사람들은 안동 시내나 인근 면에 품팔이를 나간다.
이주민 대다수는 수백m 앞에 있었던 옛 예안읍내 사람들. 이주단지도 끝까지 고향을 뜨지않겠다고 작심한 주민 11명이 이주단지 조성추진위원회를 구성, 사재를 털어 자금을 마련해 단지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정부가 수몰민 이주단지를 조성해주지 않았고 토지수용법으로 수몰민 토지를 사들이면 끝이었다는 것.
관공서와 학교 등 공공용지 터도 주민들이 닦아 해당기관에 희사했다. 권오엽 도산면장은 "정부가 해야 할 행정절차와 지원업무인데 완전히 거꾸로 된 셈"이라며 "요즘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역시 주민들이 자체조성한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 이주단지도 서부단지와 똑같은 상황이다. 처음 600여 명을 넘던 주민은 생활기반이 붕괴되면서 절반 수준인 340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여건은 더 열악하다. 안동호가 안동시내로 가는 길까지 끊어 호수 속의 육지가 되어버린 것. 권춘소(68)씨는 "댐 건설 때 다리를 가설해 달라고 했더니 배가 다니면 더 운치가 있고 관광객들도 많이 와 도움이 된다기에 철석같이 믿었다"며 당국을 원망했다.
▨변화에 순응한 사람들
수몰민들은 비록 자기 땅은 아니지만 아직 농사를 짓는다. 댐 상류 만수선을 따라 도산면과 예안지역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안동댐 유휴지다. 195만 평에 이르는 이 땅은 대부분 수몰민들의 토지였지만 댐건설 때 국유지로 편입돼 이제는 댐관리단에 허가를 받아 경작한다.
우수기 댐수위가 높아지면 침수되는 특성상 한해 농사는 늦어도 7월 중순까지는 마쳐야 한다. 심는 작물도 이때까지 수확이 가능한 보리와 감자, 옥수수, 담배 등이다.
옥수수 파종을 하던 도산면 의촌리 신덕환(59) 이장은 "갈수기에 후다닥 해치우는 도깨비농사지만 이만한 경작지도 없다"며 "먹고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씨 뿌리고 밭을 간다"며 바삐 걸음을 옮겼다.
올해 이들에게는 한 가지 낭보가 전해졌다. 호수 수질 오염문제로 유휴지 경작을 제재하던 댐관리단이 댐과 수몰민의 공존 차원에서 친환경농법 도입을 전제로 경작을 권장키로 한 것이다. 댐관리단은 올해 우선 20가구를 선정, 80만 원씩 친환경 경작지원금을 주고 영농기술을 지원할 예정이다.
소를 팔아 배를 산 사람들도 있다. 안동호에서 물고기를 잡는 내수면 어민 30여 가구다. 호수 내 물고기가 흔해 빠져 처치곤란할 정도로 어획량은 많았지만 활어판매나 가공기술이 없어 값은 바닥이었다.
주민 남모(45)씨는 "처음엔 직업이라기보다 죽지 못해 했던 고기잡이였다"며 "90년대 초반부터 자연산 민물고기가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소득원으로 자리를 잡았고 빙어 수출이 호황을 맞아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고 했다.
이밖에 일부 주민들은 댐 주변 습한 기후를 십분 활용, 버섯을 재배하고 있고 최근에는 호수 주변 산지의 야생화를 채집, 번식시켜 소득원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얘기처럼 수몰민들은 그렇게 적응하며 억세게 살아가고 있다.
▨아쉬운 정부'지자체 지원
정부차원의 본격적인 지원은 겨우 2000년대 들어서 추진되고 있다. △댐주변지역 정비사업 △댐주변지역 지원사업 △낙동강수계 물관리 주민지원사업이 골간이 되고 있다. 이 가운데 댐주변지역 지원사업은 이미 15년 전 시작됐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이들 사업은 연간 150억 원 정도가 투입돼 생산기반과 소득증대, 복지증진 분야의 영농지원, 도로건설. 의료시설확충, 주택개량 등 댐주변 주민들의 현안을 망라해 추진되고 있다.
특히 수자원공사가 지원하는 댐 도선운항 대체도로 정비사업은 가장 큰 실질적인 효과를 줄 것으로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이 사업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수몰지역 24개 노선, 총연장 57㎞에 걸쳐 시행되며 수몰된 6개 면 1천여 가구, 3천200여 명이 혜택대상이다. 댐 건설로 30년간 묶여있던 주민들의 발목을 풀어주는 상직적인 의미는 물론 생산활동과 일상 교통편의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동시가 추진하는 안동댐 홍보관~와룡면 산야리간 안동댐 순환도로 확장'포장, 안동면 동부리 안동호반 자연휴양림 및 소득식물 생태숲, 도산면 온혜리 친환경농업지구, 안동댐 동악골 농촌체험마을 조성사업 등도 소득증대와 관광활성화에 보탬이 되는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업은 이제 시작단계일 뿐이다. 4, 5년 전까지의 안동댐주변 지원사업은 흉흉한 민심을 의식한 '말의 성찬'에 불과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성과를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큰 틀이 잡힌 만큼 의지를 갖고 실천하는 것이 그간 못다한 당국의 몫으로 남아있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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