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오덕 유고시집 '고든박골 가는 길'

평생을 어린이문학 바로세우기와 글쓰기 교육에 바쳤던 이오덕(1925~2003) 선생의 유고시집 '고든박골 가는 길'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됐다. 이오덕 선생의 유고 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최종규씨가 대학노트에 빼곡히 적은 선생의 육필 원고를 정리해 모두 57편의 시로 묶은 것이다.

'우리말 살려쓰기', '우리글 바로쓰기' 등 우리 말글 사용에 관한 책이 여럿 있고, 동시집과 동화책이 몇 권 나오기는 했지만, 선생의 이름으로 시집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씨는 "선생이 어린이문학 비평과 교육운동 등에 헌신하느라 정작 자신의 창작활동 겨를이 많지는 않았으나 1994년쯤부터는 꾸준히 시 창작을 해왔다"며 "다만 이를 세상에 내놓지 않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고든박골 가는 길'은 선생의 삶처럼 단순한 미학이 숨쉬는 시집이다. 생전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충주시 신니면 무너미마을 고든박골의 소박한 일상을 담백한 시로 그리고 있다. 평소 억지로 글을 짜내고 뜻을 모호하게 만들어 쉽게 읽어내기 어렵게 글을 써내는 시인들을 질타하던 이답게 꾸밈없는 입말이 살아있는 산문 같은 시들이 상당수다.

'정말이고 또 정말이지 사람이/ 개나 돼지만큼이라도 된다면/…/ 이런 꼴을 보이겠나/ 전쟁도 없을 테고 통일도/ 벌써 오래 전에 다 됐을 테지/ 사람이 개돼지 짐승만큼만 된다면' 자연과 공존하는 삶, 욕심없는 소박한 삶, 평화로운 삶을 추구했던 선생에게는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 자연을 황폐하게 만들고 생명있는 것들을 마구 잡아 죽이는 인간이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선생의 삶과 생각은 '딸기와 버찌', '감자를 깎으면서'와 같은 시나 앵두, 염소, 감, 살구 등을 소재로 한 시들에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자연의 마음과 삶의 진정성을 잃어버린 세태에 대한 절절한 꾸짖음과 함께 환경오염과 인간성의 황폐화에 대한 안타까움 등 선생의 한결같은 마음과 글쓰기에 대한 지론이 시편들에 담겨 있다.

'본래 시고 소설이고 동화란 말이었을 것이다. 말을 그대로 적어야 참된 문학이 된다.

그런데 말은 없고(듣고 보고 겪은 사실은 없고) 머릿속 생각만을 찾아내고 뒤적이고 늘구고 바꾸고 흉내내고 짜 맞추고 근사하게 꾸며서 쓴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되게 생겨난 문학일 것이 분명하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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