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이 온화하고 예의바르며, 인간 관계가 원만한 사람을 칭할 때 "그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라는 말을 한다. 한편으론 실정법과 일반인의 법감정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많은 사람들은 "그런 법이 어디 있어?"라든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앞에서 말한 법이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강제적인 법규를 의미한다면, 뒤에 말한 법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도구이면서도 그 역할에 신뢰를 잃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유권무죄, 무권유죄(有權無罪, 無權有罪)'는 사회질서 유지 수단인 법이 그 집행에 있어 공정성을 상실함으로써 법 본래의 존재 의미를 잃어버린 절망의 상태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정치인이나 기업인 등에 대한 사건 처리가 일반인에 대한 사건 처리와 비교하여 형평성을 잃은 경우, 법은 약자 위에 군림하고 강자 밑에 초라해지는 나약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이처럼 법은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른 의미로 해석되며, 때로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때로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법 없는 사회'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일까? 이상한 것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표현은 분명 개인의 성품에 대한 칭찬임에도, '법 없는 사회'는 평화로운 모습보다 무법천지의 혼란스러운 사회 상황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라크 전쟁이나 LA 폭동, 각종 테러와 자연재해 이후 야기된 치안부재 상황을 방송을 통해 생생하게 지켜본 우리는 법의 실효성이나 통제력을 상실한 사회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바 있다.
그러한 경험은 법의 부재가 유토피아가 아닌 약육강식의 사회를 야기하며,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표현의 긍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는 '법 없이는 결코 안전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일깨워 준다. 그래서 법철학자들은 법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말한다.
부도덕한 사람이나 비양심적인 사람을 처벌할 수는 없지만, 법을 위반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제재가 가해진다. 법은 사회 구성원 간에 사회유지를 위해 체결된 약속이며, 이러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법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사회는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법이 무시되는 사회는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선량한 다수의 시민들을 무고한 피해자로 만들고, 법과 원칙이 없는 사회는 제대로 그 기능을 다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악설에 의하면, 인간은 본래 악의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 교육과 사회화 과정을 통해 생활원리들을 체득해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법과 규범을 준수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 상호간에 대한 배려와 존중에서 출발하므로, 법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기본적 배려를 모르는 사람들이고, 올바른 교육에 의한 사회화 과정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법을 지키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이 팽배한 사회는 질서유지 수단으로서의 법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사회이며, 그러한 사회는 발전을 기약하기 어렵다.
4월 25일은 제42회 법의 날이다.
제갈량은 사람을 다스림에 있어 '신상필벌' 원칙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상을 줄 사람에겐 반드시 상을 주고, 잘못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을 내려 상벌을 공정하게 해야 사회의 기강이 바로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갈량 자기가 가장 아끼는 부하가 큰 잘못을 저지르자 목을 잘라 본보기로 삼는 '읍참마속'을 하면서 '신상필벌' 원칙을 지켜 혼돈에 빠질 뻔한 군대 규율을 바로잡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법 집행에 있어서도 '신상필벌'의 원칙이 준수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법을 지키려 하지 않을 것이며, 사회는 무법천지의 혼돈 상태로 빠질 위험이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모든 일이 '법과 원칙'에 따라 행해지고, 법을 지키는 것이 손해가 아닌 당연한 민주시민의 자세로 받아들여질 때, 우리 사회는 한층 더 성숙한 선진 법치사회로 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대구지검 검사 강수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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