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보원·공정위 "소비자를 구해라"

1 지난 1월 경기도에 사는 강모(여)씨는 "이동통신사인데 현재 사용하고 있는 휴대전화 요금제를 확인해주면 할인혜택을 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단순한 신분확인절차로 알고 강씨는 카드번호를 알려줬는데 59만6천 원이 결제된 것을 뒤늦게 알았다. 확인해보니 전화를 건 곳은 이동통신사가 아니라 할인회원권 업체였다.

◇소보원, 소비자경보 발령 늘어

한국소비자보호원(이하 소보원)은 지난 20일 '통신요금을 할인해준다'는 텔레마케팅에 주의하라는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소비자경보는 소비자 안전에 중요하거나 긴급히 알려야 할 사안이 있을 경우 발령하는, 소보원이 소비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마련한 제도다.

소보원에 따르면 최근 이동통신사를 사칭하거나 이벤트 당첨 등을 빙자해 통신요금을 30~70% 할인해준다며 소비자를 현혹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소보원에 접수된 것만 1월 151건, 2월 114건 등 두달 사이 265건에 이른다. 신용카드번호와 유효기간 확인만으로도 결제가 가능한 점을 악용한다는 것. 통신요금 할인은 현행 법상 금지행위이기 때문에 이동통신사가 30~70% 할인해주는 제도 자체가 없다고 소보원은 덧붙였다.

휴대전화 소액결제를 이용, 대금을 편취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텔레마케터들이 본인 확인을 핑계로 소액결제에 필요한 주민번호를 알아내 결제승인번호를 소비자의 휴대전화로 전송한 뒤, 승인번호를 불러달라고 해 대금을 결제하는 방식이다.

접속하지도 않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액결제가 이뤄졌다는 사례도 적지않다.

휴대전화 소액결제의 경우 피해액이 수천~수만 원으로 크지 않다는 점 때문에 소비자들이 적극적인 피해구제에 나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액결제 관련 피해가 급증하자 인터넷 다음카페(http://cafe.daum.net/soeaek)에서는 소액결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수백여 건의 사례를 올려놓고 공동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소액결제 피해는 이동통신사들의 휴대전화 결제방식과도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이동통신사들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됐다. 이 카페에서 아이디 '박하'라는 피해자는 "휴대전화 소액결제 차단을 요청했는데도 여러 차례 소액결제가 이뤄졌다"며 이동통신사의 무성의한 대응을 비난했다.

길거리에서 무료영화티켓 등 경품을 준다고 해서 행사도우미에게 휴대전화를 주고 다운받았는데 요금을 조회해보니 1분 데이터 요금이 1만 원이나 나왔다는 사례도 있었다.

소보원은 피해구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위 사례에서 보듯이 소보원은 피해사례를 접수하고 피해구제절차에 들어가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올 들어 지금껏 발령된 소비자 경보는 3건. 지난 한 해의 6건과 비교하면 배 이상 많아진 셈이다. 소보원 정순일 소비자상담팀장은 "앞으로 소비자 속보 같은, 경보보다는 강도가 약하지만 소비자들이 알아둬야 할 정보들을 알려주는 절차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2 서울에 사는 ㅊ씨는 서울 모 아파트 분양광고에 40평형가구가 아파트 단지 가장자리에 있어 전망이 좋고 교통도 편리한 것처럼 돼 있는 것을 믿고 분양받았으나 실제로는 단지 중앙에 위치해 전망이 차단되고 교통도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됐다.

3 부산에 사는 주부 ㄹ씨는 한 인터넷쇼핑몰에서 공동구매를 통해 유명브랜드의 영양크림을 3만8천900원에 구입하고 3일 만에 제품을 배송받아 개봉했는데 그 회사제품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아 가짜인 것 같다며 확인한 결과 진품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4 대전의 대학생 ㄱ씨는 한 잡지 직원으로부터 특별할인행사에 당첨됐으니 1년간 구독료 40만 원을 24만 원으로 할인해주겠다는 전화에 구독계약을 체결했다. 며칠 후 ㄱ씨는 청약철회를 요청했으나 해당업체는 구독계약한 잡지는 해외서적이라 취소가 불가능하다며 수차례에 걸친 철회요구를 거부했다.

5 ㅂ씨는 한 외국어교육원 일어번역사 과정에 등록하고 신용카드로 결제한 후 3개월 정도 수강했으나 수업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강사 변경 등으로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되자 계약해지와 남은 수강료 환불을 요구했다. 교육원 측은 수강한 달의 수강료를 공제하고 나머지 70만 원을 환불해주겠다고 약속하고는 아직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공정위도 나섰다

소비자정책을 집행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18일 도시 서민과 주부, 청년, 학생 등 4개 계층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소비자피해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중점대상을 선정, 5월부터 실태조사에 들어간다.

위에서 사례로 든 것처럼 계층별 중점 조사대상은 도시 서민(부동산 분양·임대업), 주부(화장품·장신구), 청년(도서·음반), 학생(학원) 등이다.

공정위는 특히 지난달 업무보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아파트, 상가의 분양·임대 피해 예방에 관심을 기울이자 소보원에 접수된 피해사례를 검토, 상반기 중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부동산 분양·임대의 경우 좋은 전망과 편리한 교통, 일정기간 내 투자금 회수 등 사실과 다른 허위과장광고를 하거나 분양청약률을 부풀리는 등의 수법에 피해를 입는 사례가 많다. 소보원에 접수된 상가관련, 피해건수는 2001년 146건에서 2002년 216건, 2003년 268건, 2004년 337건 등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공정위는 부동산관련 피해의 대부분은 기획부동산업체에 의한 과장허위광고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주부나 여성들의 경우에는 화장품과 장신구가 중점대상이다. 공정위는 주부계층의 TV홈쇼핑이나 통신판매 등을 이용한 소비가 늘면서 이에 따른 소비자 피해예방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청년층에서는 도서와 음반이 중점 조사대상이다. 사회초년생인 대학생 등이 어학교재와 잡지, 음반 등과 관련한 허위·기만상술로 적잖은 피해를 보고 있는 것.

사교육기관 이용이 보편화하면서 학원분야에서의 피해사례도 늘고 있다. 학원 관련 소비자 피해는 계약 중도해지에 따른 환불분쟁 및 허위과장광고에 따른 피해 등이 대부분이다.

앞으로 공정위는 실태조사를 거쳐 규정위반업자에게는 시정조치를 내리고 제도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법령 개정 등을 통해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소보원와 함께 공정위도 소비자문제를 중요 업무로 격상하고 있는 것이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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