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인 무학대사(박자초·朴自超)와 관련된 설화의 비밀이 이번에는 규명될까.
경남 합천은 요즘 무학대사와 관련된 흔적 찾기가 한창이다.
삼가·대병·봉산면 일대에서 무학대사와 관련된 설화와 전설들이 많이 전해지기 때문.
이 일대에는 무학대사가 출가하면서 꽂았다는 죽은 감나무가 남아 있고 무학샘·무학굴을 비롯해 어머니가 개울을 건너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무학대사가 버드나무 가지로 바위를 내리쳐 땅 속으로 눌렀다고 전해지는 '구리방' 등 숱한 설화가 남아 있다.
경남문화재연구원(원장 박동백)은 합천군의 의뢰를 받아 이 일대에 대한 지표·시굴조사를 벌였으며 무학대사의 출생지로 전해지는 합천댐 및 대병면 상천리와 대지리 일대에 대한 현장 설명회를 20일 가졌다.
시굴조사 결과 상천리 폐사지 일대에서는 조선 초기의 기와 조각이 출토되었을 뿐 생가와 관련된 직접적인 유구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합천댐 건설 당시 부산 동아대로 옮겨 간 당대의 석탑과 와편 등을 종합해 볼 때 무학대사와 관련한 사찰이나 주거 터가 이곳에 자리잡았던 것으로 추정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무학대사 생가 흔적과 사찰 '무학당'(無學堂)과 일치하는 표석이 대지리 폐사지에서 발견돼 관심을 끌고 있다. 가로·세로 160×65cm 정도의 이 화강석 표석은 재질의 연대가 무학대사 삶의 시기(1327~1406)와 비슷하다. 고찰에 주로 있는 당간지주와 법수, 파손된 석탑 등도 함께 발견되었다.
김광천 부산 동아대 교수는 "무학당(無學堂)의 '당'자는 17세기 당시 사용된 필체인데 무학대사가 입적한 이후 이곳에 표석이 세워진 것 같다"며 "이 일대가 무학대사와 관련이 매우 깊은 곳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심봉근 동아대박물관장은 "대지리(大枝里)의 '枝'자가 어원상 '사'자로도 읽힌다"며 "대사가 사는 동네 '대사리'에서 '대지리'로 변천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폐사지의 무학당 표석과 대사리를 연계하면 이곳이 '무학의 고향'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
합천군은 이번 조사를 토대로 댐 건설로 훼손된 상천리 일대 유적과 대지리 폐사지에 대한 추가 시굴조사를 서둘러, 무학대사에 대한 유적지 복원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합천·정광효기자 khje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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