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하면 많은 사람들은 차 생산지인 지리산과 보성을 먼저 떠올린다.
또 그곳이 차의 산실인 줄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에 있는 구산선문(九山禪門) 봉암사(鳳岩寺)가 현대 국내 차 문화의 초지(礎地)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신라 헌강왕 879년 지증도헌국사가 창건한 봉암사 사찰 다례는 1970년대 초 시작됐다.
봉암사 주지로 부임한 도범(道梵) 스님이 매월 14일, 29일 2차례씩 선방에서 40여 명 스님에게 저녁 예불을 마친 후 행다법(行茶法) 강의와 시연을 2시간씩 가진 것.
행다법이란 차를 다루는 법, 즉 다사법(茶事法)과 이에 수반되는 예의범절, 분위기까지를 포함한 공간예술을 이르는 말이다.
당시 강의실 큰방은 미리 장작불로 데웠고 방안 한 쪽엔 난초 그림 한 폭이 걸렸다.
동(銅) 주전자에 끓인 찻물에 다구(茶具)도 토우 김정희 선생의 작품을 사용했다.
차 강의는 다포 접는 법, 다관 뚜껑을 여닫는 법, 다관의 절수법(切水法), 차건(茶巾) 놓는 법, 차 나무와 종류를 가르쳤는데 이는 현대 선원에서 열린 첫번째 차 강의로 지금껏 맥을 이어오고 있다.
전 봉암사 주지 원행 스님은 "도범 스님의 차 강의가 열리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비로소 차 보급이 시작됐고 봉암사는 선차(禪茶)의 선두주자가 됐다"고 전했다.
70년대 도범 스님을 만나 다기(茶器)세트를 만들기 시작한 도예가 천한봉 명장(문경요)은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힘들여 제작한 다기도 사찰에서 일부 구입했을 뿐 일반인들은 차가 뭔지도 몰랐다"며 "요즘 도자기 애호가 증가를 생각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고 회고했다.
선(禪) 도장인 봉암사가 차의 본향이 된 것은 도범 스님 이후 선혜, 여연, 선견, 돈수, 종원, 법일, 원행, 효방, 원타 스님 등이 계속 승가 다도의 맥을 이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9일 동안 열리는 문경 '한국전통찻사발축제'에 앞서 29일 '헌다 의식'이 봉암사 백운대에서 열리는 것도 문경이 단순히 찻사발을 생산만 하는 고장이 아니라 차 문화의 맥까지 잇고 있다는 자부심을 알린다는 의미에서다.
백두대간 단전 부분에 해당하는 희양산 자락에 있어 예부터 '양산절'로 불리기도 했던 '산사 속의 산사' 봉암사는 1년에 딱 하루 4월 초파일에만 산문을 연다.
이날 행사를 위해 문경다례원(원장 고선희) 원생 40명에게 출입을 허용한 것은 그만큼 매우 드문 일이다.
82년 6월 대한불교 조계종단이 특별수도원으로 지정한 봉암사는 산문을 닫은 후 서암 큰스님의 다비식과 경내 금색전 부처님 점안식 등 특별행사 때만 2, 3차례 개방해왔다
봉암사는 특히 1947년 성철 스님을 필두로 청담, 자운, 우봉 4분 스님이 개인적, 임시적 이익을 떠나 무엇이든 잘못된 것은 고치고 부처님 법대로 한 번 살아보자고 결의를 맺은 '봉암사 결사'로도 유명하다.
이용원(58·가은읍사무소 총무담당)씨는 "당시 산사 출입이 통제되자 주민들이 지역경제 위축 등을 이유로 사찰 측과 갈등도 빚었지만 지금은 많은 주민이 봉암사가 한국 불교의 정신을 계승하고 보존한다는 측면에서 긍지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문경·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사진: 문경 봉암사 선방에서는 지난 70년대 이후 지금껏 전통 다례법이 맥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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