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삼월삼짓날(4월 10일) 고령읍내에서 '보부상 할매'로 통하는 박점술(73)씨 댁에서 우사(봇짐장수계, 褓商)와의 가을 통합을 앞두고 있는 고령상무사 좌사(등짐장수계, 負商)의 마지막 공문제(총회)가 열렸다. 고령상무사 좌사의 반수(대표)를 지내면서 고령보부상을 경북도 지정문화재가 되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남편 고 곽차효씨의 뒤를 이어 사방팔방으로 쫓아다니며 고령보부상의 맥을 잇고 있는 주인공이다.
◆신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며 유물관까지 성사
"86년도부터 십년간 제사를 모시다가 다른 사람에게 인계했는데 5년 만에 다시 받았어요. 유일한 상인문화인 고령보부상 문화를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뛰어다니면서 증언도 하고, 전국에 남아 있는 다른 지역 상무사들과의 교류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었거든요."
박 할머니는 고령군이 예산(7억 원)을 확보해서 보부상 유물관을 짓기로 하기까지 안 뛰어다닌 데가 없다. 처음, 군에서 고령보부상문화에 대해서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는 협박 아닌 협박성 딜을 시도했다.
"정 이렇게 군에서 무관심하다면, 문화재청에 고령보부상 관련 문화를 넘기겠다 "고 하니 고령군에서 깜짝 놀라 "뭐가 필요하며, 어떻게 지원하면 되겠느냐"는 관심표명이 시작됐다.
"좌사일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고 가산도 숱하게 쏟아부은 남편이 죽고, 군청 직원들도 알 만하면 바뀌고 그러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고령상무사문화를 사장시키면 안되기에 충청도 반수께 고령보부상을 알리러 갔다.
◆ 충청도 예덕상무사 윤두령의 격려
고령군의 협조를 받아 충청도 예산군 덕산면의 예덕상무사 두령(고령상무사의 반수격) 윤규상씨를 만나, 고령상무사에 대한 실상을 전했다. 첫날 고령상무사에 대해서 잘 몰라서 듣고만 있던 고령의 윤 두령(78)이 다음날 박 할머니댁으로 전화를 넣었다.
"여태 살았어도, 보부상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여성은 처음이다. 어째 그래 장한 일을 하려고 하나. 내가 아는 한에 있어서는 도와줄 테니 열심히 하라"는 것이었다.
일주일 뒤, 충남 예덕상무사에서 문화제를 연다며 초청장이 왔다. 예덕상무사는 고령의 '보부상 할매' 박씨를 정성을 다해 대접했다. 호텔은 물론, 차량 식사까지 차질없이 준비해둘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부러웠다. 고령군도 요즘은 경북 지방 유일의 상인문화로 남아있는 고령상무사의 보존과 전승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정도로 달라졌다.
◆ 경주 엑스포에서도 보부상놀이 재현
"이제는 군에서 일만 있으면 뛰어옵니다. 그러면 반수(제준식, 얼굴 사진) 어른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돕습니다. 고령 상무사를 지키고, 보존하려는데 무슨 일이든 못하겠습니까. "
경주엑스포 고령의 날에 고령보부상놀이를 재현했던 팀들도 '고령 보부상 박사'인 박 할머니께 조언을 구했다. 고령 보부상놀이 재현에서 "고령보부상이라면 고령 특산물인 옥미, 흑미, 딸기를 들고 가서 팔아야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아쉽더라"고 지적하자 이듬해 고령에서 재현하는 보부상놀이에서 개선됐다.
◆ 지신밟기 통해 쌓였던 피로 풀고 단결
1866년에 결성된 139년 전통의 고령상무사 좌사는 1899년에 결성된 106년 전통의 고령상무사 우사와 올 가을에 통합을 앞두고 있다. 주변에서는 "할머니, 만날 이러고 있지 말고, 반수 한번 하라"고 그러지만 반수는 남성들이 하는 것이라 아예 꿈도 꾸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고령보부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로 칠십평생을 살았는데 통합이 되어서 큰 발전의 전기를 맞는다니 기쁘기 그지 없다.
"결혼을 한 것도 보부상의 중매 덕분이었고, 장사 떠난 남편이 없는 상태로 유기점을 하면서도 20여 명의 보부상을 너말지 솥에 밥을 해먹이며 살았습니다. 할아버지(보부상의 시조, 백달원) 제사를 모시면서 직접 돼지도 잡고, 담은 지 스무날 만에 뜨는 스무주도 담고 했던 일들이 새로운데, 이제 청년회 상가조합까지 참여한 가운데 좌사, 우사가 통합된다고 하니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딨습니까. "
◆ 교통 요충지여서 고령에서 보부상 발달
"고령은 낙동강의 수운(개진포, 사문진)을 통해 각 지역에서 운반된 물자를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와 내륙지방으로 공급하던 중요 통로였고, 전국 최대 규모인 대구 약령시가 인접해 있던 교통요지여서 보부상이 발달했지요."
사농공상의 계급사회에서 상업이 천시를 받으면서 상인문화는 거의 맥이 끊어져, 고령상무사의 전통은 그만큼 더 소중하다.
"많을 때는 일년에 여섯 번씩 모셨어요." 정월20일, 음력 삼월삼일, 오월단오, 칠월칠석, 구월구일, 대제까지 일년에 여섯 번씩 고령상무사좌사계의 제사를 모시다가 요즘은 삼월삼짓날과 구월구일 두번만 모신다.
◆ 6·25때 박오문씨 공로 커
지금 고령박물관에는 고령상무사 관련 유품이 전시돼 있다. "이 유물을 이렇게 온전히 보존하는데는 오랫동안 버선장수를 했던 박오문 어른의 공로가 큽니다. 그 어른은 고령읍내는 폭격으로 쑥대밭이 되고, 피란을 가야 하는데, 집안의 가재도구나 재산은 다 버리고 고령 상무사 좌사계의 물금장, 나무나발, 선생안 등 각종 유물을 저 궤짝에 넣어서 산중으로 피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각종 유물이 남게 되었습니다. 지금 상무사 좌사계에서 공로비를 세워드리려고 합니다."
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사진 정재호 편집위원 jhchu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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