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편지-꽃이 전하는 말

모처럼의 등산길, 종종거리며 앞서 가던 딸아이가 갑자기 돌아서며 묻는다. "아빠, 큰 나무 밑에 있는 작은 나무들은 꽃을 어떻게 피워요? 햇볕도 비도 잘 못 받을 텐데." 과연 키 큰 오리목 응달 아래 듬성듬성한 참꽃들은 아직 망울을 틔우기가 힘겨워 보였다.

갑작스런 질문에 답이 궁했다. "응, 살랑거리는 나뭇잎 사이로도 햇볕은 드나들고, 흙과 바람은 작은 나무들에게도 모든 걸 다 전해 주지." "그래도 아직 꽃이 안 핀 걸 보면 참 힘든가봐. 큰 나무가 좀 도와주면 될 텐데." 딸아이의 말에 문득 성적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자꾸만 목숨을 끊는 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2년여 전. 2003학년도 수능시험에서는 우리나라 대학입시에 관련된 모든 이들이 결코 잊지 못할, 잊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다. 시험 당일 입시기관들이 섣불리 난이도를 낮게 예측하면서 '올 수능 쉬웠다', '수능 점수 크게 오를 듯' 등의 기사가 그날 저녁 뉴스부터 이튿날 조간신문에까지 일색으로 쏟아졌다. 그러자 수능 점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절망에 빠졌고, 결국 한 수험생은 목숨을 끊고 말았다.

불과 하루 뒤 수능 점수가 다소 내려갈 것이라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표본채점 결과가 나오자 모든 언론은 고개를 떨궜다. 부끄러워하며 다시는 이런 불확실한 예측 기사를 쓰지 않겠노라고 앞다퉈 다짐했다. 기자는 다행히 석간신문인 덕분에 학교와 학원가의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다르게 기사를 써 다소간의 책임은 면했으나 결코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한 번의 시험, 그것도 패자부활전이 없는 극단적인 승부를 강요하고 승자와 패자를 간단히 구분해 버리는 사회를 순순히 받아들이기에 10대는 너무 예민한 시기다. 사회를 그렇게 만들고, 편입을 강요하는 어른들을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은 나이다.

요즘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를 보면 2년 전의 상처가 다시 근질거리는 느낌이 든다. '삭막한 교실, 친구와 피 말리는 전쟁, 대입 열두 고개, 성적 나쁘면 하향 전학, 자퇴 후 검정고시…' 고교 1학년생들의 중간고사와 관련해 언론은 극한의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 내신 성적이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척도라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몰고 간다.

2008학년도 입시부터 내신 비중이 커진다는 소식에 1학년생들의 수업 분위기가 좋아졌다며 흐뭇해 하던 고교 교사들은 쏟아지는 기사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불안해진 학생들이 정말 친구들과의 경쟁이 인생을 좌우하는 거냐며 하소연하는 통에 달래기 바쁘다는 교사도 있었다. 수능시험의 중요성이 여전하고, 대학들이 내신 성적을 어떻게 얼마나 반영할지 아직 모르고, 대학별 고사 역시 중요할 것이라는 등의 설명을 하지만 좀체 분위기가 진정되지 않아 걱정이라고들 했다.

그러는 사이 다시 목숨을 끊는 고교생들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 2년 전처럼 인과관계가 분명한 것은 아니라는 이유일까. 위기감을 조장하는 언론들의 보도는 자꾸만 되풀이되고 있다. 학생들을 '절망'이라는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내모는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하는 것인가.

산을 내려오면서 봄볕이 더 따뜻해지면 딸아이와 함께 꼭 다시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쯤 활짝 피어있을 참꽃을 통해 이르든 늦든, 양지든 음지든 골고루 꽃을 피워내는 자연의 조화로움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사람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만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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