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외면받는 '소풍'

봄 소풍 전날 꿈에 부풀어 밤잠을 설쳤던 기억은 이제 옛말이 돼 버렸다. 부모와의 체험학습이나 나들이, 각종 단체를 통한 캠프 등이 일상화된 탓에 소풍이 옛날만큼 매력을 가지지 못한다. '현장체험학습'으로 명칭이 바뀐 뒤에는 교실 밖 수업의 역할을 해내는 장점도 있지만 감상문이나 활동보고서를 작성하느라 힘들다는 학생들의 푸념도 터져나온다.

▲바뀐 소풍 풍경

20년 전 가까운 뒷동산이나 강가 등을 찾아 술래잡기와 수건 돌리기, 보물찾기를 하며 하루를 보냈던 소풍과 요즘 아이들의 봄 소풍은 크게 다르다. 대부분의 학교는 '현장체험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반별로 테마를 정해 하루 바깥 나들이에 나선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탈춤을 보러 가기도 하고, 영화를 관람하거나 봉사활동을 가는 등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하지만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현장학습'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종 공부나 조사 보고서 작성 등으로 오히려 수업하는 하루보다 더 힘든 소풍이 되기 때문. 고교생 김모(17'달서구 장기동)양은 "가뜩이나 내신 비중이 커서 성적에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체험학습 보고서를 수행평가에 반영한다고 엄포를 놔 오히려 스트레스만 더 받았다"고 했다.

교사들도 신경이 곤두서기는 마찬가지다. 반별로 움직이다 보니 외부에서 생길 수 있는 모든 사고에 대한 책임을 교사가 감당해야 한다. 이 때문에 ㅈ중학교의 경우 몇 년 전부터 반별 현장학습을 포기하고 전체 학년이 함께 놀이동산을 찾는 것으로 환원하기도 했다.

▲의미 없는 소풍

여전히 놀이공원에서 하루를 보내는 학교도 많다. 놀이공원은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소인데다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돼 교사 입장에서도 학생들을 지도하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자연학습'이나 '공동체의식을 높인다'는 소풍의 근본 취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끼리끼리 모여 놀이기구를 타는 것이 전부일 뿐 교사들이 애써 장기자랑이나 반별대항 게임 등을 마련해 놔도 아이들에게 외면받기 일쑤다. 중학생 이상이 되면 교사의 현장지도도 필요 없어 아이들은 대강 오전 시간을 보낸 뒤 PC방이나 노래방, 쇼핑센터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 아예 관례가 돼 있다.

이렇게 놀이 동산이 선호되면서 일부에서는 학생 유치를 위해 교사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기도 한다. 박신호 전교조 대구지부장은 "접대를 받고 무료 티켓을 나눠주는 정도는 교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소풍의 의미조차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교사나 학생 서로 편한 것만을 찾는 식의 소풍이라면 차라리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교육청의 보조 있어야

교사들은 소풍의 의미에 맞는 현장 체험학습을 권장하더라도 현재와 같이 교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형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부담감이 줄어든다면 꼭 봄 소풍, 가을 소풍 시기를 따지지 않더라도 현장학습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몸을 사릴 수 밖에 없다는 것.

지난주 아이들과 경주 기차여행을 다녀왔다는 임전수 능인중 교사는 "자동차가 보편화하다 보니 기차를 처음 타보는 학생도 많아 굉장히 즐거워 했지만 행여나 사고가 날까 부담도 많이 됐다"며 "더 많은 학교에서 현장학습이 행해지기 위해서는 교육청 차원에서 임시 보조교사를 쓸 수 있도록 지원을 해 준다든가 여행자 보험을 지원하는 등의 보완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형식을 위해 무작정 보고서를 쓰도록 하는 교육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임성무 도원초교 교사는 "아이들을 통제하고, 증거를 남기기에 편하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보고서를 강제하는 것은 오히려 교육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이라며 "자료 베끼기에 급급하도록 아이들을 다그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충분히 느끼고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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