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조와 함께

이 비누를 마지막 쓰고 김씨는 오늘 죽었다

헐벗은 노동의 하늘을 보살피던

영혼의 거울과 같은

조그마한 비누 하나.

도시는 원인 모를 후두염에 걸려 있고

김씨가 쫓기며 걷던 자산동 언덕길 위엔

쓰다 둔 그 비누만한

달이 하나 떠 있다.

이우걸 '비누'

김씨! 그의 일생 혹은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면 몹시 눈물겹다.

그에게도 보랏빛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은 종내 꺾여 버렸다.

영혼의 거울과 같은 작은 비누 조각을 마지막으로 쓰고 이 세상을 하직했기 때문이다.

죽음의 원인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다만 '쫓기며 걷던'이라는 구절에서 미미하게나마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첨단 과학문명시대를 사는 인간의 고뇌를 적잖게 시화(詩化)에 힘써온 시인은, '비누'에서 간결한 묘사와 담담한 진술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아픈 한 단면을 떠올리고 있다.

삶의 진정성 문제를 상기시키는 작품이다.

이정환(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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