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에 이어 대구 산업 중심축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자동차부품업. 이 역시 대기업은 1차 협력업체를, 1차는 2, 3차를 옥죄는 불공정거래 관행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단가 인하, 인하, 인하….
"또 당했습니다."
올초 완성차 대기업과 단가 협상을 벌인 대구·경북 1차 부품업체들은 "대기업들은 올해 역시 납품 단가를 깎아내리기만 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1차에 따르면 대기업들의 단가 인하 관행은 외환위기 이후부터 연례 행사가 되고 있다. 특히 국내 자동차 시장이 현대·기아의 독점체제로 접어든 2000년대 이후에는 단가 압박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대기업들은 경쟁 입찰(총 부품구매금액을 최저가로 제시한 업체 선정)을 시행하고 있다. 문제는 입찰 이후에도 단가협상을 다시 한다는 것. 대기업은 수시로 목표 원가를 제시한 뒤 1차 협력업체가 여기에 따라 올 것을 강요한다.
"단가 인하는 크게 CR(비용절감·Cost Reduction)과 VE(가치공학·Value Engineering)로 나뉩니다. 대기업들은 자체 원가계획서를 토대로 비용절감(CR)을 요구해 왔는데 이것만으로는 단가 인하 정도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협력업체들의 자체 절감 계획(VE)을 끊임없이 강요해 온 것이죠. 이에 따라 외환위기 후 경영압박 가중 속에서도 단가 낮추기 수준은 해마다 총 매출액의 2~5%에 달합니다."
1차 업체들은 "대기업들의 요구 수준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이 2, 3차 업체를 쥐어짜야 한다"며 "최근엔 어떻게든 납품을 따내려고 상식 이하의 단가를 제시하는 경쟁업체들도 많아 그 같은 현상이 더욱 만연하고 있다"고 했다. 행여 단가 인하 요구에 '반항'이라도 하면 기업 경영에 막대한 타격을 받기 일쑤.
경북 ㅂ사 관계자는 "CR 문제로 대기업과 갈등을 빚어 신규아이템 공급이 2년간 끊기고 있다"고 했다. 또 업계는 "대기업들이 각 부품별 협력업체들을 2, 3곳으로 늘려 말 잘 듣는 기업에게만 납품량을 많이 주는 방식으로 협력업체들을 통제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인건비
임률(시간당 평균 임금) 고정은 대기업들이 하청업체들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 만든 대표적 불공정 관행이다.
"대기업들이 자체 제작한 원가계산서는 재료비, 인건비, 가공비 등으로 구성되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인건비죠. 그러나 대기업들은 단가계약때 산정한 최초 임률을 해당 차종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고정시킵니다. 하청업체들은 인건비 증가분을 반영 못해 생산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죠."
한 1차 부품업체 간부는 "임률 고정으로 인한 피해는 2, 3차 부품업체에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며 "인건비 상승은 연간 7, 8%씩 적어도 2억 원 이상이라 임률 고정에 따른 인건비 상승분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2차 업체를 쥐어짤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지난 20일 대구 북구 검단공단 한 자동차부품업체는 점심시간인데도 납품기일을 맞추느라 일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그러나 이 업체 사장은 "피땀 흘려 일해도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며 1차 업체를 원망했다. 신차종 부품을 많이 취급하는 1차업체는 임률을 새로 선정해 원가 부담에서 곧 벗어날 수 있지만 중고부품을 주로 생산하는 2차업체는 한계 상황을 지나 언제 문닫을까 고민하는 지경이라는 것이다.
실제 이 업체는 100여 개 부품을 생산하지만 이 중 신차종은 단 3개에 불과하다. 사장은 "현 시점의 적정 임률은 1만 원선이지만 5년전 단가를 아직까지 그대로 적용해 임률이 5천, 6천 원에 불과한 부품이 수십 개에 달한다"고 하소연했다.
인근 업체도 "심지어 10년 전 AS부품을 예전 단가 그대로 납품해 생산하면 할수록 손해만 보고 있지만 납품 중단은 입도 벙긋할 수 없다"며 "원청업체가 다른 부품 거래까지 몽땅 끊겠다고 엄포를 놓기 때문"이라고 했다. 종업원 수 40명의 달성공단 한 2차 부품업체의 회수율(총매출액에서 원자재값을 빼고 남은 납품총액)은 10년 전 40%, 5년 전 30%에서 올해는 15%까지 줄어들었다.
이 회사의 지난달 매출액 5억 원에서 원자재값을 뺀 총납품액은 8천만 원에 불과한 실정. 하지만, 올 들어 인건비만 월 6천만 원으로 올랐고, 여기에다 물류, 연료비 등 각종 부대 경비를 빼고 나면 매출 제로나 마찬가지라는 것. 업체 사장은 "인건비 부담을 호소해도 1차 협력업체들은 늘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라며 "직원들만 아니면 당장 회사를 때려 치웠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바이백
대기업들은 최근에는 중국 '바이백(역수입)'이라는 새로운 단가인하를 강요하고 있다.지역 부품업계는 "대기업들은 단가 인하 압박이 한계에 이르자 1차 협력업체들에게 중국으로 진출, 값싼 노동력으로 부품 단가를 낮추는 바이백을 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바이백은 필연적으로 산업공동화를 초래한다. 자동차부품업종의 중국 진출을 가속화해 생산라인 축소와 대규모 실업사태가 잇따를 가능성이 높은 것.
바이백은 현재 대구·경북 자동차부품업계 생존과 관련 최대 화두로 급부상했다. 대구지방공정거래사무소 정운학 계장은 "1차 업체의 바이백으로 인해 납품 물량이 줄거나 거래가 끊긴 2, 3차 부품업체들의 불공정거래 신고가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기획탐사팀 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사진: 대구'경북의 제조업에 종사하는 영세 하청업체들 역시 일방통행식의 원하청 압박구조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대구 3공단 내 한 영세 하청업체.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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