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이 70이 다 돼 가는데도 부부 금실이 얼마나 좋은 지 부러울 정도라니까요. 서문시장에서 잉꼬 부부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4천명이 넘는 상인들로 시끌벅적한 서문시장. 부부가 함께 장사를 하는 점포가 많지만 2지구 2층 '공작 상회'를 운영하는 이창구(67)'허동학(67)씨 부부는 서문시장 최고의 잉꼬 부부로 손꼽힌다. 어떤 분들일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지난 22일 점포를 찾았다.
"두 분 금실이 그렇게 좋다면서요."기자의 첫 마디에 마음 좋은 할머니 같은 얼굴로 허씨가 손을 가로 저었다. "금실이 좋기는 뭐가 좋아. 어제도 싸웠는데…."
늙은이보다는 젊은 사람을 싣는 게 낫다며 인터뷰를 사양하는 두 분 곁에서 애교(?)를 떨며 이야기를 끌어 나갔다. "서문시장에서 장사를 한 지 40년이 넘었어. 상인들 중에서도 최고령에 속하지. 하지만 놀면 뭐해. 건강이 닿는 한 일하는 게 좋아."
내의류를 판매하는 이 부부는 나이가 들어 눈도 침침하고 젊은 사람보다 안목도 떨어지지만 장사를 그만 둘 생각은 없단다. "주인이 젊으면 젊은 손님이 많고, 주인이 늙으면 늙은 손님이 많이 오는 법이야. 자식들이 장사 그만 두라고 하지만 돈을 왕창 안겨 주는 것도 아니니 그 말을 들을 수가 없지."
커다란 빨간 꽃무늬 팬티 등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속옷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삼남매를 다 결혼시키고 손자도 있지만 노부부는 둘이서 사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했다.
"자식들하고 같이 살아봐. 어머니, '반찬 뭐 해드릴까요' 하며 며느리는 신경 써야 하고…. 영감, 할마이 대충 해먹으면서 살면 되지. 아니면 사먹어도 되고…." 노부부의 삶의 가치관은 뚜렷해 보였다.
"자식 교육시키고 결혼시켜 집 한 채씩 장만해 주면 알아서 사는 거고, 부모가 병들어도 자식이 간병하는 시대는 지났어. 한달에 100여만 원씩 2년 정도 간병인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각각 2억씩 있으면 노부부 둘이서 살아도 아무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어."
여느 할머니, 할아버지들처럼 손자 본다고 집에 들어앉을 생각도 없단다. "제 자식은 자기가 키워야지. 어릴 때는 엄마 손이 필요하고, 좀 크면 밖에 보내야 되니…. 모처럼 쉬는 일요일에는 내 시간을 가져야지 손자 보며 집에 있을 수는 없지. "
노부부의 1주일은 바쁘게 돌아간다. 가게 문을 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 부부는 새벽 5시면 눈을 뜬다. 전기밥솥에 아침밥을 안쳐 두고 집이 있는 비산 4동 달서교회 부근에서 달성공원까지 걸어가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오는 산책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리곤 오전 9시 가게 문을 열어 오후 6시 문을 닫을 때까지는 시장에서 대다수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곤 밤 9시가 되면 일찍 잠자리에 든다.
"일반 재래시장에 있어봐. 밤 11, 12시까지 일하며 잠 못 자고 꼼짝 못하고 가게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서문시장은 저녁 일찍 마치고 친척 집에도 들를 수 있고 일요일에는 쉴 수 있어 자기 시간을 가지며 장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서문시장에 들어오는 상인이 많아."
젊은 부부들도 하루 종일 있으면 티격태격하기 일쑤이지만, 이 부부는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재미나게 시간을 보낸다. 도매로 보낼 물건도 싸고 소매 손님도 맞으면서 중간 중간에 노래도 부르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친구'처럼 보일 정도다.
"젊을 때는 제법 노래를 잘 했는데 이제는 목소리가 가서 예전만 못해." 이렇게 얘기하지만 이 할아버지는 허 할머니에게 못 가르쳐 주는 노래가 없을 정도로 대다수 노래를 훤하게 꿰고 있다.
일요일이 되면 노부부는 산으로 간다. 앞산, 팔공산, 비슬산…. 예전에는 먼 데까지 가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어서 피곤하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날 생각을 하니 가까운 곳을 찾게 된단다.
"그저 서민의 삶이지. 고관대작들처럼 골프를 치는 것도 아니고 둘이서 점심값으로 1만∼2만 원만 있으면 돼. 국밥 한 그릇에 5천 원 하고 고기를 구워 먹어도 1인분에 3천원씩 3인분 시키고 밥, 음료수까지 해도 1만2천 원이면 충분해."
경상도 남편은 한평생 살면서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는 소리를 아내에게 하기 힘들다면서도 이 할아버지는 "마누라하고 다니는 것이 다른 사람하고 가는 것보다 좋다"며 웃음짓는다. "부부가 일심동체라지만 마음이 꼭 맞을 수가 있나. 가게에서 싸우면 밖에 나가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오고… 그게 인생이라…."
부부가 인격을 서로 존중하면 감정이 상하는 일이 생겨도 서로 양보가 된다고 말하는 이 할아버지. 인정 많은 시장 상인들을 벗삼아 웃고 떠들며 장사를 계속 하는 것이 노부부가 젊고 즐겁게 사는 비결이라고 했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사진: 서문시장에서 금실이 좋기로 소문난 이창구'허동학 부부. 노부부 둘이서 건강하게 일하며 친구처럼 즐겁게 지내 서문시장 최고의 잉꼬 부부로 손꼽힌다.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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