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소수자 우대정책과 지역할당제

1965년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은 행정명령(administrative order)을 통해 '소수자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을 시행한다.

이 소수자 우대정책은 오랫동안 차별받아 정치적, 경제적으로 덜 대표되어왔던 집단들에게 고용과 승진, 그리고 대학입학 등의 기회를 증대시켜주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사슬에 묶여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던 이들에게 그 사슬을 제거해준 후, 이들로 하여금 달리기 경주의 동일 출발선 상에 설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다시 말해 과거의 차별적 요소를 지녔던 법과 제도의 철폐만으로는 근본적인 차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그들에게 보다 많은 지원 또는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 정책 시행의 취지였다.

이 취지는 닉슨 대통령에 이르러 고용에 있어서 나타나는 인종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 정도의 소수자 채용을 요구하는 연방정부 차원의 정책이 실시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필라델피아 플랜'(Philadelphia Plan)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

이 소수자 우대정책에 따라, 대학은 소수인종들에게 인종별 할당량(quota)을 정해놓고 이에 입각하여 입학을 허가하였고, 관공서와 민간 기업은 채용을 할 때 인구구성비에 준하는 인종별 할당량을 정해놓고 선발하였다.

또한 정부가 발주하는 공공 공사의 경우, 이들 공사의 일정 부분은 소수자가 경영하는 업체에 돌아갔다.

이렇듯, 소수자 우대정책은 미국사회의 주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공정한 규칙에 의해 주어지는 기회에 덧붙여서 우선권을 줌으로써, 이들이 미국사회의 내부에 들어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입학 및 사원채용과 관련하여 지역(지방)할당제라는 제도가 주목을 받고 있다.

2005년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는 처음으로 지역균형선발제로 신입생을 뽑았다.

그 결과, 지난해 수시모집과 비교해 볼 때, 서울 출신 고교생이 38.2%에서 34.5%로 낮아진 반면 시·군 출신의 합격자는 32%에서 33.6%로 높아졌다고 한다.

신입사원 채용에 있어서는 지난해 지방대생, 장애인 등의 채용을 확대하라는 기획예산처의 지침 하달 후 지역할당제를 도입한 공기업이 늘어났다고 한다.

가령 한국가스공사는 지역할당제를 실시한 결과 신입사원 중 지방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이 9%포인트나 증가했고, 산업은행의 경우는 지방대 출신자만 선발하는 지역금융 분야를 신설했으며, 한국은행과 기업은행의 경우도 지역할당제나 지역전문가제도를 도입, 적용하여 신입사원의 일정 비율을 지방대생 출신자로 선발했다.

또한 중앙인사위원회는 지방인재의 공직 진출을 확대시키기 위해 지역할당제처럼 지역을 안배한 인턴채용제를 도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국의 소수자 우대정책이 이 정책의 실시로 인해 상대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백인들에 의해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이라고 비판받듯이, 우리의 지역할당제도는 서울과 수도권의 주민과 대학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법적인 차별로 인해 소수자들(소수인종 혹은 지방주민과 지방대학 출신자)에게 동등한 기회가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를 철폐함으로써 이들에게 그 기회가 주어지도록 하는 데에는 아무런 이견이 없지만, 다수의 권익을 침해하면서까지 소수자들을 우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 그러한 비판의 핵심적 요지이다.

이러한 비판은 우리로 하여금 소수자 우대정책 도입 시기에 제기되었던 근본적인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한다.

오랫동안 이런 저런 제약 때문에 달리기 경주에 출전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아예 연습도 할 수 없어 쇠약해져 있는 이들에게 단지 출전권만을 주면, 공정한 시합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해도 되는지에 대한 물음이 바로 그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문제가 바로 우리가 짊어져야 할 사회적 부담이기 때문이다.

1996년 소수자 우대정책의 폐지를 요구하는 209호 캘리포니아 주민발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앞두고, UCLA교정의 한 모퉁이에서 어느 히스패닉 학생이 행했던 연설은 지역할당제 문제로 논란을 겪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연설의 요지는 '소수자들로부터 미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미국사회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빼앗고, 이들을 주변으로 내몬다면, 결국 이들은 미국사회를 위협하는 거대한 괴물로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결국 이 괴물을 처치하기 위해 앞으로 미국사회는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된다'는 것이었다. 안용흔 대구가톨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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