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필자가 간혹 찾는 여의도 어느 식당에 증권사 직원으로 보이는 넥타이맨들이 가득하였다.
"동북아 금융허브? 요원한 것 아니야?" 외국계 펀드에 대한 세무조사, 5퍼센트 이상의 주식취득 시에 그 경위를 밝히도록 규정한 5퍼센트 룰 등으로 외국계 금융사들이 모이기는커녕 떠날 징조라는 것이다.
세무조사나 5퍼센트 룰 모두 외국계뿐만 아니라 이른바 토종 금융사에게도 적용되는 것인데….
우리나라가 동북아시아에서 금융허브가 되기 위하여는 특혜를 주어 외국계 금융사들을 유치해야 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금융허브의 요건은 특혜가 아니라 투명한 게임의 룰 하에서 공정하고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어서 금융 전문인력과 금융 관련 고급정보가 모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외국계 유수의 금융사가 국내에 진출하거나 기존의 사업을 확장하고 토종금융사도 번창하게 되어 더 많은 일자리와 소득을 만들어 내는 것이 금융허브의 길이다.
사실 한국 금융산업은 외환위기 후 구조조정기를 거치면서 건전성이 크게 향상되었으나 글로벌 선도 금융기업에 비하면 수익성 면에서 개선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1997년 말 2천101개에 이르렀던 금융회사가 2004년 8월 말 현재 1천358개로 3분의 1 이상 줄어들었다.
금융기업이 보유한 부실채권도 1999년 말 66조7천억 원이던 것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하지만, 수익/비용비율(income/expense ratio)로 측정한 수익성 면에서 국내 은행들은 1~1.2를 기록하고 있어 Citi나 HSBC등 글로벌 선도 은행의 1.8대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제경쟁력 평가 중 금융부문 경쟁력이 1997년 43위에서 2004년 40위로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960년대에 시작된 고도압축성장과정에서 실물성장의 견인차로서 충실한 역할을 해온 우리나라의 금융서비스는 관치금융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회사도 문닫을 수 있다는 것이 보여지면서 스스로 생존하고 수익을 남겨야 하는 독자 산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금융서비스업의 이러한 역사적 발전과정에 비추어 볼 때 금융의 전략산업화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전략산업화를 위한 5대 과제가 수미 일관하게 추진돼야 한다.
먼저, 금융산업 선진화를 위한 기반 인프라 확충과제로서 투명하고 전문적인 규제감독 시스템이 확립되어야 한다.
금융시스템 리스크 관리자로서 금융시장의 신호등 역할과 건전성 모니터링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 신뢰 받고 효율성 있는 자본시장의 구현이 필수적이다.
새롭게 출범한 증권선물거래소가 단순한 거래 엔진으로서 역할을 넘어서 시장 조성자로서 입지를 새롭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셋째, 고급 금융전문인력이 효과적으로 양성될 수 있는 교육·연수 체계가 확립되어 금융서비스 고부가가치화를 견인할 전문인력이 적기에 공급될 필요가 있다.
물론 개별 금융사의 전문 영역별 경력 및 성과관리체계 확립과 함께 추진되어야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금융기업과 금융기업 간은 물론 여타 관련기업과 공유 서비스 영역의 확대와 전략적인 제휴 등 긴밀한 가치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금융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급변하는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향상시킬 수 있어야 한다.
끝으로, 개별 금융 기업들이 확고한 비전과 전략 아래 내부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과거 크게 차별화하지 않은 금융상품, 서비스들을 푸시형으로 판매해왔다면(produce and push), 이제 시장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분석에 바탕을 두고 개별 고객 세그먼트별 니즈와 이슈에 대응하는 솔루션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sense and respond)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요컨대, 동북아 금융허브란 금융전문인력과 금융관련 고급정보가 모이는 곳이다.
전문인력과 고급정보가 모이도록 하기 위하여 금융회사들의 내부역량 강화, 효율성 증대를 위한 기업 간 협력체계 구축, 고급 금융전문인력이 양성될 수 있는 산·학·연 연계체계 확보 및 규제와 시장인프라 구축에 성공한다면 '동북아 금융허브가 요원한 먼나라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최명주 교보생명 상임고문(전 IBM BCS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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