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비움

한 친구가 말했다. "내 가진 것, 옷이든 무엇이든 누가 원하면 줄 생각이야. 이젠 덜 가지고, 가진 건 나누며 살아야겠어." 그다지 넉넉하지도 않은 친구의 그 말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소유'의 관점으로 사람을 본다면 두 타입이 있음 직하다. 나이 들수록 제 가진 걸 비워 단출해져 가는 사람과 삿된 욕심이 오히려 더뎅이져 가는 사람.

모래집 짓느라 해지는 줄도 모르다가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짓다 만 모래집 그대로 두고 달려가는 아이처럼 언젠가는 빈손으로 떠나는 게 바로 우리네 인생. 그러면서도 손 안의 것에 대한 미련을 종내 못 버리는 우리이기도 하다. '롱(朧: 감숙성)을 얻으니 촉(蜀: 사천성)도 얻고 싶어진다'는 데서 나온 말 '득롱망촉(得朧望蜀)'은 인간 욕심의 끝없음을 말해준다.

평생을 홀로 살다 양로원에 들어간 경기도의 80대 할머니가 경로연금 등을 푼푼이 모은 전재산 700만 원 중 500만 원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내놓았다. 20여 년간 방 한칸을 내준 집주인에게도 감사의 뜻으로 100만 원을 건넨 할머니에겐 용돈으로 쓸 100만 원만 남았다. 8년간 수감생활 후 출소했다는 한 50대 남자는 청송의 한 초등학교에 작은 봉투를 맡기고 갔다. 신문에서 방학이 싫다는 결식아동 기사를 읽고 마음이 아팠다며 8년 동안 교도소 작업장에서 받은 노임 67만9천900원을 내놓았다.

월 2천200원에서 최고 2만2천 원까지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는 그 남자는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 번 돈 중 가장 깨끗한 돈이라고 했다.

할머니에게 500만 원은 있는 사람의 5억, 50억보다도 큰돈이다. 한때는 죄인이었지만 그 남자는 굶주리는 아이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이다. 모두 마음이 부요한 사람들이다.

청송교도소의 한 수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이젠 가난하지만 마음 편한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먹자. 풀잎을 햇살에 비벼먹을지언정 남의 쌀독을 기웃거리거나 남의 밥을 빼앗을 생각일랑 말자. 조금씩 지닌 것도 서로 나누어 먹는 나눔의 삶을 믿음 안에서 행하자'''." 헛욕심 탓에 온갖 부정이 난무하는 이 사회에도 이렇듯 작은 소유마저 비우는 사람들, 비움의 삶을 다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텅 빈 충만, 무욕(無慾)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 아닌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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