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게 내뿜는 원색과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인상적인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를 기억하는가. 외톨이 소녀 아멜리에(오드리 토투 분)의 깜찍한 표정과 혼자놀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그녀의 소박한 행동들, 그리고 그녀의 아기자기한 연애까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그려내면서도 마치 판타지 소설처럼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독특함은 아직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영화는 그 유명한 에펠탑이나 센강을 한 차례도 비춰주지 않지만 너무나도 프랑스다운 색채로 파리를 담아냈다. 아기자기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영화 '아멜리에'의 향기를 좇아가 봤다.
프랑스 니스에서 야간 열차를 타고 유럽여행의 종착점인 파리에 이르렀다. 비몽사몽으로 복잡한 파리의 지하철에 몸을 싣고 숙소가 있는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길을 나섰다. 이곳은 아멜리에가 누군가 찢어 놓은 사진 조각들을 사진첩에 모으는 운명의 남자 니노(마티유 카소비츠 분)를 만나는 장소다.
그녀는 니노의 사진첩을 우연히 갖게 되고 그 사진첩을 돌려주기 위해 이곳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니노를 만나는 것이다. 아멜리에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자신의 사진을 돌려받기 위해 파란 화살표시를 그려놓아 니노가 그 표시를 따라 샤크레쾨르 성당까지 올라가게 만든다. 괜시리 영화에서 파란색 화살 표시가 그려졌던 곳으로 발길이 갔다. 영화에서 본 회전목마와 함께 그 뒤로 새하얀 샤크레쾨르 성당이 나를 반긴다. 이곳에서는 파리의 시내가 시원스레 내려다보인다. 시계 바늘은 오전 9시를 가리켰지만 벌써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강렬한 햇살이 눈부신 화창한 아침이다. 봄을 노래하듯 나무와 잔디의 푸르름과 파란 하늘, 그리고 뽀얀 돔의 샤크레쾨르 성당이 엽서 속 사진처럼 내 가슴을 적신다. 모두들 샤크레쾨르 성당을 등지고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성당 뒤쪽으로 걸어가면 조그마한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테르트르 광장이 나온다. 이젤을 펴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무명화가들이 제각각 자리를 잡고 있다. 이 광장을 지나 영화 속에서 아멜리에가 웨이트리스로 일했던 카페로 향했다. 지도 한 장 없이 무작정 행인들에게 '아멜리 뿔랑(Amelie Poulain)'의 카페가 어디냐고 물었다. 거리를 청소하고 있는 미화원,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주머니,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학생과 할머니까지…. 다행히 그 카페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배시시 웃으며 길을 가르쳐준다. 점점 카페가 가까워짐을 확신하며 15분쯤 르픽(Lepic)이라는 길을 따라 걸었을까. 신기하게도 정말 'cafe des 2 moulins'이라고 적힌 카페가 눈 앞에 드러났다. 너무도 반가웠다. 영화에서 본 모습 그대로이길 바라며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영화 '아멜리에'의 포스터. 여배우 오드리 토투의 익살맞은 표정이 유난히 귀엽게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 전직 곡예사로 다리를 저는 여주인 수잔과 항상 알레르기로 고생하면서 카페 한 구석 담배가게를 차지하고 있는 조제뜨, 그리고 카페의 단골인 삼류작가와 웨이트리스 스토커 조셉이 아직도 카페 안을 지키고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카페 안은 영화에 나왔던 조제뜨의 담배가게는 없고 테이블로만 가득 메워져 있다. 영화와는 달리 조금은 현대적인 모습의 바(Bar)로 바뀌어져 있다. 그래도 이곳은 관광객들의 카메라셔터 소리가 멈추질 않는다. 영화에서 니노가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봤다.
그리고는 잔뜩 폼을 잡고 하얀 거품 위에 초콜릿 가루가 뿌려진 진한 카푸치노를 입 안에 가득 머금었다. 우리나라 카페와는 달리 바(bar)가 아닌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면 추가요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계산서를 받고 난 후 알았다. 카페를 나와 조금 내려가니 바로 메트로가 보인다. 어렵게 찾아와서 그런지 메트로가 바로 보이자 힘이 쏙 빠진다. 카페를 나와 걷는 동안 자꾸만 멀어지는 카페를 다시 뒤돌아보게 된다.
한달 동안 유럽 속 영화 촬영지를 찾아 구석구석을 뒤졌다. 혹시 하나라도 지나칠까 몇 번을 다시 보고 또 봤다. '과연 이곳이 아직 그대로 있을까''못 찾으면 어떡하지' 등등. 여행 내내 걱정을 한아름 안고 여행을 해서 그런지 직접 촬영지를 내 눈으로 확인했을 땐 희열마저 느꼈다. 런던의 영화 '러브액츄얼리' 촬영지부터 시작해 파리의 영화 '아멜리에' 촬영지까지…. 마치 6편의 영화를 한꺼번에 감상한 듯한 느낌이다. 부담과 기대가 뒤섞인 한달은 이제 추억의 한구석을 채우고 영화와 함께 나의 소중한 일기장처럼 평생 가슴 속에 묻을 것 같다. 박지혜(대구가톨릭대 조형정보디자인과 4학년)
★다음주부터는 여행 독자이벤트의 3번째 주자 강건해(29'대구 달성군 화원읍)씨의 '유럽과 호흡하는 신화'가 이어집니다.
사진:1. 몽마르트언덕 위의 샤크레쾨르 성당. 하얀 건물이라 마치 조각품처럼 느껴진다.2. 르픽(Lepic)가에 위치한 카페 '2 물랭(2 moulins)'의 외부 모습. 3. 영화 속 아멜리에가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곳이다. 카페 '2 물랭(2 moulins)'의 내부. 저 멀리 한쪽 벽에 영화 '아멜리에' 포스터가 붙어 있어 이곳이 영화 촬영 장소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4.몽마르트 언덕의 회전목마와 샤크레쾨르 성당. 영화 '아멜리에'에서 아멜리에가 니노에게 그의 사진첩을 돌려주던 장소이다. 영화에서 보이던 회전목마가 샤크레쾨르 성당과 조화를 이뤄 왠지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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