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이발사, 시골 형사, 3류 '무도인', 평범한은행원…. 대중은 그의 친근하고 편안한 이미지를 사랑한다. 약간 허풍도 있고 다소모자라기도 한. 부담없는 웃음과 감동은 바로 거기서 나온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다르다. 오는 5월 19일 개봉하는 '남극일기'(감독 임필성, 제작 싸이더스)에서 송강호는 차갑고 독한 모습을 보여준다. 기대 반, 우려 반이다.
그러나 무척 궁금한 것은 사실. 송강호 아닌가. 그런 점에서는 일단 성공이다.
봄바람이 기분 좋게 불던 지난 26일 햇살 좋은 삼청동의 한 갤러리에서 송강호를 만났다. "아, 오늘 날씨 참 좋네"라며 담배를 맛있게 피우는 그의 얼굴에서는 은연 중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아주 자신있다. 대중영화로서 절대 부끄럽지 않은 영화다." 과연 그럴까. '남극일기'는 남극탐험대의 이야기다. 그러나 역경과 고난을 뚫은인간의 승리를 그리지 않는다.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변화를 포착했다. 여기에미스터리까지 가미했다. 화면에는 흰눈과 얼음만이 펼쳐지지만 화면을 감싸는 감성은 반대로 대단히 어둡다.
"어두울 수는 있지만 공포영화의 어두움은 아니다. 꽉 죄이는 듯한 어두움, 무게와는 차이가 있다. 또 미스터리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장르가 미스터리도 아니다.
누구는 이 영화에 범인이나 반전이 있을 것이라 추측도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에이, 너무 추상적이다. 반전도 없단 말인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그렇다면 '남극일기'의 재미는 어디에 있는가.
"왜, 살다보면 도저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원형적 감성이나 느낌이 있지 않나. 우리는 대부분 공식대로 살아가는 편이다. 겉으로 볼 때는 그렇다.
그러나 마음만은 그렇지 않다. 어떤 현상의 원인에 대해 유추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명확하지는 않다. 이 영화의 미스터리는 바로 그런 부분에 있다." 송강호는 이 영화의 출연을 '살인의 추억' 촬영 도중 결정했다. 무려 2년 6개월전이다.
"임필성 감독이 촬영장으로 들고온 시나리오를 읽고 그날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그런데 제작이 한참 늦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흰눈만 나오고 인물도 6명밖에 없으니 투자자들이 선뜻 나서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쉬운 영화였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거절했을 것이다. 새로운 인물, 이야기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선뜻 OK한 것이다." 충무로 최고 블루칩 중 한 사람인 그가 무려 1년여를 묵묵히 기다렸다는 얘기다.
그는 극중 남극 탐험대장이다. 탐험 도중 베이스캠프와의 교신은 끊어지고 식량은 바닥난다. 기상악화와 함께 의문의 사건이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대장은 절대적인 권력을 손에 쥐게된다. 송강호가 악역을 맡은 것일까.
"극지라는 곳은 일반 세상의 룰이 통용되지 않는 곳이다. 대장의 한마디와 생각에 대원들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이 된다. 그런 면에서는 대장이 대단한 권력자로 비친다. 그러나 영화 속 인물들의 갈등은 직급의 차이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입장과 관계에서 나온다. 대장은 권력자로 보이지만 가장 여린 사람이다.
그의 여림이 느껴지면 영화는 성공한 것이다. 영혼의 외로움이 보였으면 좋겠다." '남극일기'는 남극에서 찍지 않았다. 그와 가장 비슷한 뉴질랜드에서 두달간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
"외국에서의 두달은 제작비에 있어 한국과 게임이 안된다. 그쪽은 스태프가 집 대문을 나와서 다시 들어가는 타이밍까지 딱 돈으로 지급된다. 약속된 시간이 되면말없이 짐을 꾸리는 그들의 모습에 처음에는 정말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추위? 명함도 못 내민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그는 한국에서의 영화 작업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다시 느꼈다고 한다.
"한국영화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스태프들의 영화에 대한 꿈과 희생 아닌 희생을 담보로 한 것임을 새삼 느꼈다.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정확한 시스템이 바람직할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영화는 산업 이전에 예술 아닌가. 그렇게 계산만앞세우다가는 작품이 원하는대로 나오기 힘들다." 부디 그 모습 변치 않기를 바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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