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법과 의학사이-한의사의 의료사고

만성 B형간염과 갑상선기능 항진증을 앓던 40대 중반의 여성이 병원치료를 받다가 손발이 저리고 몸에 열이 있자 한의원을 찾았다.

한의사는 환자에게 어떤 질병이 있는지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에 대해 물어보지 않고 환자도 자신의 질병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았다.

한의사는 진맥을 한 후 단순 원기부족으로 판단, 한 달 분량의 '가미청심탕'을 처방했다

환자는 하루 3회씩 한약을 복용했는데 약을 복용할수록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서 한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했고 그때 한의사는 약에는 문제 없고 다만 용량이 과다해 그런 것이라고 했다.

환자는 한의사의 지시에 따라 하루 2회로 줄여 계속 복용했다

그러나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배가 부어오르고 황달 증상까지 나타났다.

환자는 병원을 찾아가서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고 진찰을 받았다.

병원 의사는 환자에게 급성간염이 발병한 것을 확인하고 환자를 급히 종합병원으로 옮겼다.

종합병원 의사는 초음파 등 검사를 통해 환자의 간(간 실질)이 심각하게 손상됐음을 확인했다.

그녀는 종합병원에서 약 7일간 입원 치료를 받다 결국 숨졌다.

담당의사는 한약을 잘못 복용하는 바람에 급성간염이 발병해 사망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진료기록지에도 '약물에 의한 간 독성 가능성'이라고 기재돼 있었다.

유족들은 한의사가 환자의 기왕력(이전의 건강 상태)을 물어보지 않아 병인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해 잘못된 한약처방을 하는 바람에 환자가 급성간염으로 사망했다며 한의사를 상대로 의료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의사는 한약이 급성간염을 초래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임상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며 환자는 한약복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존의 만성 B형간염이 우연히 한약복용 시기에 악화돼 사망에 이르렀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재판 과정에서 의사회는 한약복용이 급성간염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의료계의 상식'이라고 답변했다.

반면 한의사회는 한약복용이 급성간염의 발병과 무관하다고 했다.

한의사회와 의사회의 대리전 양상으로 번지는 듯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환자가 남긴 3봉지의 한약성분을 감정했으나 중금속 및 인체 유해요소는 검출되지 않았고 한약성분이 간 기능 악화와 급성간염을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이런 상태에서 더 이상의 심리가 진행되지 않은 채 당사자 간에 합의가 이루어져 사건은 종결됐다.

이 외에도 한약재의 중금속으로 인한 신경마비, 침술시술로 인한 신경장애 등 한의사의 의료행위와 관련한 사고가 가끔 발생한다.

한의사는 의사의 의료행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고 위험성이 낮다.

그렇지만 한의사도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만큼 사고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 사례다.

임규옥(변호사·법의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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