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학가 시험 커닝 "첩보영화 뺨치네"

지난 20일 모 대학의 교양과목 시험을 감독했던 정모(33·여) 강사는시험 후 교실에 버려진 각종 커닝(부정행위) 페이퍼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책상이나 의자는 물론 미니 커닝 북에 OHP(Over Head Projector) 필름 등을 이용한 각종 도구들이 어지럽게 버려져 있었던 것.

정씨는 "시험 시작 전, 자리를 바꾸고 부정행위 적발시 엄벌하겠다고 경고했지만 도무지 막을 수 없었다"며 "선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 재시험을 치르겠다"고 했다.

대학가의 커닝 풍토가 점입가경이다. 취업난 속에 학점관리를 위한 기상천외한 첨단 커닝기법이 등장하고 인터넷 유명 포털사이트에는 커닝 방법 및 적발시 구체적인 대처요령까지 나돌고 있다.

가장 흔한 커닝인 책상 위나 벽면, 그리고 종이나 신체부위에 깨알 같은 글씨로 예상답안을 적어놓는 고전적인 방법, 엄지손톱만한 초미니 커닝 북이나 글씨가 써지는 테이프를 활용하는 방법은 이미 유행이 한풀 꺾였다.

최근 가장 각광받는 것은 OHP 필름을 이용한 커닝. 특히 암기해야 할 분량이 많은 과목의 시험에 주로 이용한다. 예상답안이나 시험자료를 복사기용 OHP 필름으로 축소복사한 뒤 헌 책상 위에 깔아두면 감쪽같이 감독관의 눈을 속일 수 있다는 것.

휴대전화, PDA, 전자사전 등 최첨단 기기를 동원한 수법도 등장했다.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전송 기능과 음성녹음을 활용하기도 하며, 손바닥에 감춰질 만큼 작은 카메라 폰으로 예상답안을 찍은 뒤 이를 몰래 꺼내보기도 한다. 교양과목의 경우 대리시험도 인기(?)다.

모 대학 3학년 김모(26)씨는 "대부분 과목이 상대평가를 하다 보니 커닝을 방치할 경우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며 "불안감 때문에 너도나도 커닝을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대학들이 커닝 방지를 위해 시험장소 바꾸기, 감독관 늘리기 등 감독을 강화하고, 적발 시 엄벌을 강조하고 있지만 지능화, 첨단화한 커닝 수법들을 막기란 역부족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수백 명의 학생들 사이에서 교묘하게 이뤄지는 부정행위를 적발하기는 힘들다"며 "일부 강사들은 강력한 제재를 할 경우 불만을 낳거나 소문이 나빠져 다음 학기 수강신청을 기피하기 때문에 알고도 묵인하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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