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교의 탄생

이승원 지음/M humanist 펴냄

지금은 학교 가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한때는 금기시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구한말 우리나라에 서양식 학교가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이야기다. 1885년 설립된 배재학당은 지원자가 없어 시험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하기는커녕 공책과 연필, 점심값을 지불하면서 학생들을 유치했다. 1886년 스크랜턴 부인이 설립한 이화학당은 천연두에 걸려 광화문 밖에 내버려진 아이들을 치료해준 후 제자로 받아들였다. 학생 품귀 현상을 보였던 시대의 진기한 풍경이다.

이 책은 100년 전 학교 풍경을 통해 우리 몸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근대적 습속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저자는 100년 전 학생들의 모습과 자신의 학창시절 모습이 흡사한 점을 발견하고 '100년 전 학교 풍경은 지금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저자는 8년여 동안 '독립신문' '매일신문' '대한매일신보' '만세보' 등 100년 전 각종 신문, 잡지와 씨름하면서 당시 한국 사람들의 삶과 풍속, 제도가 어떻게 현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에게 100년 전 학교는 한국 근'현대를 다양한 시선에서 접근할 수 있는 프리즘이다. 100년 전 학교 풍경은 오늘날과 너무나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초기 근대식 학교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들끓었던 도가니였다. 100년 전 한국의 목표인 부국강병을 실현하기 위해 우후죽순처럼 학교가 설립되었고 근대식 학교는 온갖 이질적인 담론과 풍속들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학교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학생들을 교육함과 동시에 기존 풍속과는 전혀 다른 서구적 풍속과 문화를 한국인들에게 제공하는 매개체 역할까지 수행했다.

학교들은 처음에는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교육열 덕분에 이내 입학 경쟁이 시작되면서 오늘날과 같이 입시지옥의 모습이 출현하게 된다. 학교는 적은데 입학하려는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과외가 활성화되고 예상문제집, 기출문제집 등의 책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급기야 1930년대 조선총독부는 입학시험 폐지를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

그 당시에도 통학길은 로맨스가 꽃피는 장이었다. 미팅이나 소개팅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 전차나 기차안은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였다. 또 1920년대 후반 한국은 포로노그라피 전성시대를 맞았다. 일본에서 수입된 각종 도색잡지와 누드화보, 성(性)과 관련된 서적들이 독서계를 강타했다.

미성년자에게 팔지 말아야 한다는 규제가 없었으니 돈만 있으면 누구든지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성교육은 제대로 실시되지 않았다. 1920년대 후반에 발표된 올바른 성교육을 위한 지침은 성을 불결하고 두려운 것으로 만드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고리타분한 경구가 가정과 교육계에 잔존하고 있었기 때문. 이런 성교육 지침은 1982년 문교부에서도 마련했지만 1920년대 성교육 지침과 비교해서 그리 변한 것은 없었다.

운동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은 1897년 4월 27일 서울관공립소학교에서 실시된 대운동회였다. 당시 경기 종목은 연합체조, 100보 경주, 200보 경주, 400보 경주, 멀리뛰기, 높이뛰기, 씨름 등 지금과 별반 다른 게 없었다. 다만 군사적 성격을 띤 대포알 던지기, 기마돌격 경주, 모의 전쟁 등이 있었는데 1907년 이후 일본 통감부에서는 운동회 성격이 군사훈련과 흡사하다는 이유로 운동회를 감시하기 위해 경찰력을 동원하거나 운동회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100년 전에도 특목고 열풍이 있었다는 점이다. 1895년 2월 고종이 반포한 '교육입국조서'에 따라 법관 양성소, 외국어학교, 무관학교, 경성의학교 등 특목고가 많이 설립되었다.

또 젊은이들이 미국, 일본 등으로 선진 문물을 배우려고 유학을 떠났고, 1912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수학여행 붐이 조성되기도 했다. 이 밖에 아르바이트가 생겨났고 학생운동도 거세게 일어나는 등 100년 전에 이미 지금의 학교 풍경 밑그림이 완성되었다. 376쪽, 1만4천 원.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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