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동차 문화에 시동걸기

황순하 지음/이가서 펴냄

루이뷔통, 샤넬처럼 자동차에도 명품이 있다. 그렇다면 세계 5, 6위 자동차 대국이라는 우리나라에 명품 자동차는 있을까. 아쉽게도 대답은 'No'다. '비싼 차는 있어도 명품은 없다.'

1992년 기아자동차에서 대형 승용차로 처음 출시했던 포텐샤는 당초 목표했던 '뒷자리 회장님'차에서 실패했다. 이유는 뭘까? 일본에서 고속주행을 즐기는 '오너용 차량'이던 마쓰다 929를 국내 시장에 도입하면서 '뒷자리 회장님' 생각을 하지 않은 탓이다. 제동거리가 짧아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뒷자리 회장님'들을 절하게 만든 불경죄다. 역으로 그 다음에 나온 엔터프라이즈는 제동거리가 길어 탑승자들에게 아찔한 경험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 책은 '자동차 문화에 시동걸기'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사실은 자동차 보고서에 가깝다. 현 대우자동차판매 기획실장 상무인 필자는 자동차에 관한 한 안해본 것이 없다는 사람이다. 20여 년을 자동차 관련 업무에 종사하면서 국내외에서의 자동차와 그 문화에 대한 경험을 온전히 녹여냈다.

자동차를 명품으로 만드는 5가지 조건은? 저자는 고급차도 결국 '수많은 부품으로 이뤄진 제조품'이라며 '기계'로서의 특질과 명품 특유의 감성기준으로 평가될 수 있는 '느낌'의 관점에서 생각하라고 권하고 있다. 기계적 관점에서의 5가지 조건은 달리고, 돌고, 멈추는 기능과 안전성, 내구성. 이를 보면 사실상 어느 자동차나 추구하고 있는 자동차의 기본 기능에 대한 강조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만 명품이 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그 미세한 성능에서 오너들에게 '느낌'을 줄 수 있는 가에 달려 있다. 배기량이 크다고 해서 절대 명품이 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명품은 오너의 5감을 만족시켜야 한다. 여기서 5감이란 반야바라밀다심경에 나오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가운데 설(맛)을 뺀 5가지다. 안은 외관, 이는 소리, 비는 냄새, 신은 촉감, 의는 탑승자의 감성을 나타낸다. 탑승자의 이 같은 5감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명품 반열에 들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대형차는 명품이 아닌 가격만 비싼 차라고 일축하고 있다.

경차이야기에서는 일본에서 경차 문화가 어떻게 자리잡을 수 있었는가 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나라 경차 탄생의 비밀과 경차 정책의 문제점을 은근한 어투로 비판하고 있다. 고급 사양이 잔뜩 달린 경차, 경차와 소형차가 경쟁하고 이를 부추긴 정부 정책 속에서 경차는 결국 설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아우토반이 벤츠와 BMW를 만들었다' '개척자 정신으로 탄생한 미국차' 등에서는 외국에서의 운전 및 자동차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이 만들어 온 자동차 문화를 다뤘다.

국내에서 그저 그렇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해외에서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은 스포티지, 출고 3년만에 불과 1천200여 대만 만들어진 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스포츠카 엘란에 얽힌 뒷이야기 등도 공개했다. 국내에서나 해외에서 가장 대중적인 차로 인기를 끌고 있는 쏘나타 등 준중형차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이 흠이라면 흠.

정창룡기자 jc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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