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위기'의 농촌 재래시장을 가다

시골 5일장은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이자 어린 시절 갖가지 추억이 서린 곳이다.

50, 60대를 훌쩍 넘은 도시민들은 지금도 그 옛날 시장 한쪽 가마솥에서 구수하게 피어오르던 국밥 내음과 '아지메'가 말아주던 국수맛을 잊지 못해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시골장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지금은 대부분이 오전 11시가 지나면 파장으로 접어들고 오후에는 상인들만 자리를 지키는 등 겨우 명맥만 이어오고 있을 뿐이다.

최근 정부가 재래시장 활성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시골장 안을 들여다보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게 재래시장 상인들의 주장이다.

지난 29일 오전 10시 의성군 속칭 도리원(봉양) 5일장. 이른 아침부터 노점상들이 면 소재지 인도에 자리를 잡은 탓에 도로는 차와 사람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뤘다.

오랜만에 과거 시골장의 풍경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

하지만 이 같은 모습은 '겉모습'일 뿐이다.

시장 안으로 몇 미터만 들어가면 재래시장의 우울한 현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말이 시장이지 사람은 구경할 수 없고 상인들만 처량하게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시장 안의 장옥(상가) 대부분이 오랜 세월 비바람을 못이겨 나무기둥과 슬레이트 지붕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하다.

굳게 잠겨 있는 장옥 사이사이에는 잡풀들만 주인행세를 하고 한쪽은 개집으로 변해 인산인해를 이루던 옛 풍치를 느낄 데라고는 단 한 군데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시장 안 어물전에서 30년째 생선을 팔고 있는 신모(48)씨는 "시장 앞 인도에 노점상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 누가 시장까지 들어오겠느냐"며 "흉물로 남아 있는 장옥들을 모두 털어버리고 노점상들을 시장 안으로 들여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문을 닫은 장옥들은 대부분 창고로 활용되고 있으며 시장 안 공터도 주차장으로 변해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시장 안 장옥들에 대한 재정비가 시급하다"고 거들었다.

이처럼 재래시장이 제기능을 잃은 지 오래됐지만 당국은 무관심으로 일관, 재래시장 상인들과 주민들로부터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주민 이모(64)씨는 "노점상들이 면소재지 중앙통 인도를 점령하면서 도로에 차와 사람이 뒤엉켜 학생들의 등·하교 교통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지만 지도·단속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의성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시장 상인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데다 예산문제 등으로 수십 년간 방치돼 온 시골장의 장옥들을 정비하기가 쉽지 않지만 대책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의성군은 현재 의성읍 5일장 내 고추시장에 대한 비가림 시설 등에 9억 원을 투입, 현재 공사 중에 있으나, 면지역 5일장 정비는 아직까지 요원한 실정이다.

이에 비해 군위군은 군위읍과 소보면 5일장 장옥들을 철거하고 조립식으로 깨끗하게 재정비, 재래시장 활성화에 나서 의성군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군위읍 5일장은 지난 2000년 사업비 5억8천600만 원(도비 5천만 원, 군비 5억3천600만 원)을 들여 낡은 장옥을 모두 철거한 뒤 새 장옥 13개 동과 화장실 1동을 새로 신축했다.

또 시장부지 2천317평을 말끔히 포장하고 하수도 정비도 마쳤다.

소보 5일장 역시 2003년 1억6천500만 원(도비 5천만 원, 군비 1억1천500만 원)을 들여 장옥 1개 동과 시장부지 562평을 포장하는 등 재래시장 살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군위군청 홍연백 새마을과장은 "군위·소보 5일장은 배수시설이 없어 비만 오면 진흙탕으로 변해 상인들과 주민들의 원성이 높았으나 시장부지 등을 정비한 후에는 지역민들의 반응이 아주 좋다"며 "올해는 3억 원을 들여 우보 5일장을 정비하고 내년에는 의흥 5일장을 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군위·의성 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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