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숙제가 진화하면서 '가족신문 만들기'는 학생들의 단골 숙제가 됐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가장 부담되고 어려운 것 중 하나다. 한두 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몇 날 며칠을 꼬박 매달려 정성을 쏟아야 하기 때문. 여행도 한 번쯤은 다녀와야 하고, 여러 차례 아이디어 회의도 거쳐야 하는 등 챙겨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숙제라는 부담감을 벗어버리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와 학습의 기회로 생각한다면 '가족신문 만들기'는 가족의 '역사 기록'을 남기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단순히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두는 이상의 색다른 맛이 숨어 있는 것. 또 만드는 과정에서 가족간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된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가족신문 만들기'를 통해 가족의 행복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대구 효성초교 조현광(31) 교사에게 들어봤다.
▲가족신문으로 사랑 채우기
효성초교에서는 가정의 달을 앞두고 지난 달 '교내 디지털 가족신문 공모전'을 열었다. 신문을 만들면서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취지에서 계획한 행사다.
조현광 교사는 "처음에 귀찮아했지만 갈수록 아버지들의 열성이 대단했다"며 "심사결과가 발표되자 학교로 전화가 와 원망 섞인 하소연을 털어놓으며 '정말 열심히 했는데…'를 되뇌는 아버지들도 상당수였다"고 했다.
아이들의 반응도 대단했다. 늘 일에 바쁜 아빠 엄마와 한자리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은 이번 기회에 자신이 태어나기까지의 이야기나 성장 과정에 얽힌 부모님의 추억담을 듣기도 하고 성씨와 가족의 뿌리에 대해 알아볼 수도 있었던 것.
특히 '가족신문 만들기'에는 학교에서 매일 아침 수업 시작 전 20분씩 진행하고 있는 NIE강좌도 위력을 발휘했다. 평소 신문 기사 쓰기의 기본과 신문 편집의 특성 등을 이해하고 있어 짜임새 있는 가족신문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었다.
▲만들기 어렵지 않아요
가족신문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기획회의를 거쳐야 한다. 신문의 이름과 크기, 기사의 유형과 가짓수 등을 정한 뒤 가족이 골고루 역할을 분담해야 하는 것. 가족신문에는 가족회의, 가족상담실, 가족 및 친지의 동정 등을 소식란에 담을 수 있으며, 가족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기록해둔다는 의미에서 각종 아이템을 구상해볼 수도 있다. 또 자녀가 그린 그림, 사진, 만화 등을 활용하거나 가족의 일기, 시, 편지 등으로 코너를 꾸며도 좋다.
기획에 따라 취재와 글쓰기가 끝나면 그때부터는 편집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어떤 기사를 어느 정도의 크기로 어디에다 배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레이아웃'은 연습장에 대략적인 구도를 잡아본 뒤 종이에 직접 글을 쓰거나 오려 붙일 수도 있으며 컴퓨터 워드 프로그램을 활용해 깔끔하게 편집할 수도 있다.
다만 가족신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부모가 너무 많은 일을 거들어 주는 것은 좋지 않다. 조 교사는 "간혹 처음부터 끝까지 부모님이 만들어놓은 가족신문이 눈에 띄기도 했다"며 "이렇게 되면 가족간의 유대감을 돈독히 한다는 취지에도 맞지 않고, 아이의 의존성만 키워주게 될 우려가 높으니 가능하면 아이가 주도적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두 배로 재미있는 신문 만들기
신문은 읽어주는 독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만드는 재미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따라서 친지나 이웃, 친구들과 가족신문을 돌려보며 서로 평가를 해 준다면 가족신문 만들기가 더욱 재미있고 활기찬 작업이 될 수 있다. 특히 한 번 만들고 말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발행하는 데는 고정 독자 확보가 큰 힘이 된다. 책임감이 더해져 신문발행을 게을리할 수 없기 때문.
자녀나 기고자의 수고에 대해 선물이나 원고료를 지급하는 방법을 사용해 볼 수도 있다. 조 교사는 "적절한 보상이 따른다면 신문 만들기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만든 보람도 더 느낄 수 있다"며 "친지나 친구 등 외부 기고를 통해 기사 형식을 다양하게 할 수 있고, 원고료 명목으로 작은 선물까지 한다면 친밀감도 깊어질 것"이라고 했다.
실제 기자가 된 것처럼 인터뷰에 도전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이때는 가족이나 친구 등 주위 사람보다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좋다. 여행지에서 만난 외국인 관광객이나 관리인 아저씨, 동네 경찰관이나 각종 시설의 자원봉사자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자.
글·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사진·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 이런 점은 주의해야
아무리 가족끼리 만들고 주위에 돌려보는 신문이라고 해도 반드시 지켜야 할 점은 있다.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발행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부분도 있다. 이에 대해 매일신문사 주최 '가족신문 공모전'을 최근 심사한 본사 최미화 편집위원은 "신문이 갖춰야 할 기본을 빠뜨린 작품, 컴퓨터 편집에만 몰두하다 보니 독창성을 잃은 작품, 기존 신문 못지않게 구성했지만 정해진 규격을 지키지 않은 작품 등이 눈에 많이 띄어 아쉬웠다"고 지적했다.
가족신문을 만들 때는 대개 재미있고 깊이있는 내용을 담는 데만 치중하는데 신문의 제호, 발행인, 발행날짜 등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신문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또 컴퓨터로 편집하다 보면 판에 박인 형태가 나오기 쉬운데 이 역시 제작하고 읽는 재미가 떨어져 오래 가기 힘들다. 올해 공모전의 경우 총 1천246편의 작품이 접수됐는데 손으로 만든 작품보다 컴퓨터로 편집한 작품이 더 많았음에도 독창성 측면에서는 손으로 만든 작품들이 훨씬 뛰어났다.
최 위원은 "가족간의 사랑을 충분히 담아내면서 형태와 구성 면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가족신문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 없는 최고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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