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학교 시험 잘 못 치면 정말 가고 싶은 대학엔 못 가나요? 수능시험 잘 쳐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학생)
"내신 잘 받기 위해 수준이 낮은 학교로 전학하거나 여차하면 자퇴까지 고려해야 한다는데 현명한 선택일까요?"(학부모)
"2008학년도 대입 제도의 세부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는데 고교들이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 문제 아닙니까?"(교사)
새 학기 들어 각종 매체에서 가장 많이 다룬 교육 관련 기사는 '고1 내신 대란'이었다. 내신 관리를 잘못하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없다는 내용이 앞 다퉈 보도되자 학생과 학부모는 마땅한 대처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불안해하며 학원으로 달려가고 있다. 과연 지금의 보도처럼 심각한 문제일까. 2008학년도 대학입시의 본질부터 파악하고 들면 해답과 함께 가야 할 길이 보인다.
▶ 내신대란의 원인
2007학년도까지는 학생부 성적, 수능 성적, 대학별 고사(논술, 구술, 심층면접, 적성고사 등) 등의 전형 요소를 대학이 자율적으로 조합하여 신입생을 선발하도록 되어 있다. 2008학년도 이후의 대입제도 개선안도 이 같은 기본 골격 면에서는 현재와 별 차이가 없다.
결정적 차이는 내신과 수능에 등급제를 도입한다는 점이다. 2007학년도까지 내신과 수능은 구체적인 점수나 비율 제한 없는 평어 등으로 나타났지만 2008학년도부터는 내신과 수능 모두 9등급으로만 표기된다. 교육 당국은 이와 관련 "내신 반영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수능의 반영 비율을 낮춰 점차 자격 기준으로만 활용하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3불 정책(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본고사 금지)은 고수할 것이라고 지금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대학별 고사가 금지되고 수능이 등급으로만 표기돼 변별력을 상실하게 되면 내신이 입시의 당락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요소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까지 내신은 100점 만점에 90점만 넘으면 전교생 모두가 수를 받을 수 있었지만 고1부터는 상대평가를 하기 때문에 전교생이 만점 실력을 갖고 있어도 상위 4%만이 1등급을 받을 수 있다. 외형상 주어진 이 같은 조건 속에서 내신 대란은 어찌 보면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 관건은 실질반영비율
현재 대입 전형에서 형식적인 내신 반영 비율은 40~60% 정도이다. 총 1천 점 만점(내신 500점, 수능 450점, 논술 50점)으로 입학 사정을 하는 대학을 예로 들어보자. 내신 반영비율이 50%이므로 형식상으로는 전교 1등이 500점 만점, 꼴찌는 0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 대학들이 기본 점수를 크게 줘 반영 총점의 5% 정도만 실질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전교 1등이 500점이라면 꼴찌도 4백75점을 받는 것이다. 수능 점수는 0점에서 만점까지의 격차가 그대로 반영된다. 논술과 면접은 기본 점수를 어느 정도 주긴 하지만 같은 학과에 지원한 비슷한 성적의 학생들 사이에는 당락을 뒤집을 정도의 점수 차이를 낸다. 결국 대부분 대학에서 내신은 당락의 결정적 요소가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2008학년도 이후에는 어떻게 반영될 것인가. 교육 당국은 내신의 중요성만 강조했지 반영 방법과 실질 반영 비율은 제시하지 않았다. 대학에 자율로 맡기겠다고만 했다. 그런데 대학들 가운데 이를 확정해 발표한 곳은 하나도 없다. 당분간 발표될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반영 방법을 모르니 일단은 예체능 과목까지 과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실질 반영 비율을 모르니 외형적인 비중만 바라보며 겁에 질릴 수밖에 없다. 원하는 대학에 갈 만한 내신을 받지 못한다면 전학이나 자퇴를 생각해야 한다. 결국 실체 없는 유령을 두려워하는 것과 비슷한 꼴이다. 이 와중에 사교육 기관만 덕을 보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소
3년 단위로 바뀌고 있는 입시제도 변화의 경계선에 있는 학생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시험용 쥐가 되어 부당하게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이해찬 세대들의 뼈저린 교훈은 그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1은 전례가 없기 때문에 불안하고 고2는 재수를 하게 되면 새 제도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고1보다는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을 높이는 요인은 두 가지나 더 있다. 첫째 학교시험에서 출제와 채점의 전 과정이 과연 공정하고 투명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몇몇 학교에서 드러난 내신 조작 사건은 이러한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엄격한 상대 평가의 적용은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으로 하여금 서로를 불신하고 삭막한 경쟁심을 가지게 하고 있다. 둘째로는 일관성을 잃은 교육 당국의 무책임함이다. 내신 비중을 높여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고 호언하던 교육 당국은 내신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자 대학이 내신만으로 뽑는 게 아니라며 슬쩍 꼬리를 내렸다.
▶ 대학의 입장에 주목해야
전형 요소를 수능과 내신, 대학별 고사로 나눌 때 등급으로만 주어지는 수능은 학과 단위 경쟁에서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결국 대학이 내신 반영 방법과 실질 반영 비율을 어떻게 결정하고, 대학별 고사의 방법과 비중을 어느 정도로 하느냐가 핵심이다.
내신에 대해 아직 대학들이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지만 일단 내신 전쟁을 바라보는 대학들의 시각이 다소 냉소적인 것은 분명하다. 한 상위권 대학의 입학 담당자는 "대학은 어떤 방법을 쓰든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는 데 전력을 기울일 테니 내신 걱정은 너무 하지 말고 실력을 다지면 된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실력은 무엇을 뜻할까.
대학들은 지역'학교 간 실력 차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에 내신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따라서 실질 반영 비율을 지금과 같이 낮게 유지하거나, 아예 지원 자격으로만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최상위권 한 대학은 특목고 학생 유치를 염두에 두고 내신 1~3등급에게 동일한 자격을 부여하는 것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반영 방법도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현재도 수시와 정시에서 전 과목 내신을 반영하는 대학은 많지 않다. 특히 예'체능은 당락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새 대입제도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능하다면 전 과목을 잘 하려고 노력해야 하겠지만 자연계는 수학, 영어, 과학, 인문계는 국어, 영어, 사회 과목을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사진: 고교 1학년생들의 중간고사를 전후해 각종 매체들이 앞 다퉈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지만 새 입시제도의 세부 내용이 확정되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는 공연히 불안에 휩싸일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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