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현장은 답답하다.
오늘 우리 교육은 평등론과 수월성이 팽팽히 맞서서 사생결단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에 따른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교원 단체, 학부모 단체, 대학 당국 등이 각자의 목소리를 드높일 때마다, 그리고 줄이 어느 한쪽 방향으로 기울 때마다 그것을 바라보는 학생과 학부모는 어느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고 누구의 편을 들어 행동해야 할지를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다.
내신과 수능을 9등급으로 단순화하여 지나친 성적 경쟁과 사교육의 부담을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고 했을 때는 우리 교육의 방향이 평등론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그러나 서울대를 비롯한 일부 대학들이 대학별 고사의 비중을 높이겠다고 말하자 그 줄은 다시 수월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기울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 줄다리기를 하는 교육 당국과 대학들의 안중에 학생과 학부모라는 관중은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자신의 교육 철학이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전개되는 경기 결과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는 관중의 절박한 심정을. 내신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면 상위 등급을 받는 학생을 제외하고는 자퇴를 할 수밖에 없고, 학교에 남게 된 상위권은 또 저들끼리 경쟁하여 누군가를 상대적인 하위권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자퇴 도미노 현상'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대학별고사의 비중을 높인다면 사교육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고 공교육은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내신 대란에 휘말려 있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대학 본고사 부활 방침을 발표한 서울대와 이에 동조하는 대학들의 주장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를 교육 당국은 생각해 보았는가.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자살을 하고, 얼마나 많은 기러기 아빠가 양산되고, 얼마나 많은 가정 경제 파탄을 목격해야 이들의 고통을 알 것인가. 교육 당국은 대학과 수혜자인 학생, 학부모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새 대입개선안을 다시 검토하여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그 구체적인 세부 시행 사항을 하루빨리 발표해야 한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다음 사항을 꼭 고려하기를 바란다.
획일적 평등주의는 계층 이동을 원천 봉쇄할 가능이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교육의 폭발적 팽창은 고교평준화와 수능시험이 쉬워진 것과 궤를 같이한다.
수준이 맞지 않는 학생을 한 교실에 넣어 가르치다 보니 상위권은 수업 시간에 딴 짓을 하고 하위권은 말귀를 알아들을 수 없다.
상·하위권 모두가 자기 수준에 맞는 학원을 찾아 공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가 쉬우니 어느 정도 머리만 되면 투자한 만큼 성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사교육은 상·하위권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별 특화 수업으로 공교육과 대결하여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내신과 수능이 무력화되고 논술, 심층면접 같은 대학별 고사가 강조되면 경제력과 정보력이 없는 학생은 앞으로 명문대학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시골 수재가 수능시험에서 원점수로 500점 만점에 495점을 맞고, 서울 강남의 부유층 학생이 470점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수능에서 25점의 실력 차가 나지만 성적표에는 둘 다 1등급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면접시험에서는 온갖 과외를 받고 다양한 정보를 가진 강남 학생이 그렇지 못한 시골 수재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논술과 면접시험은 그 속성상 한 개인의 문화적 배경과 다양한 지적 체험 과정을 평가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물고기를 잡고 저녁노을을 바라본 경험과 같은 정서적 덕목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이제 시간이 없다.
분명한 선발 기준을 하루빨리 발표하지 않으면 교육 현장에서는 하루하루 흉흉한 소문과 억측에 따른 불행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날 것이다.
평등론자들은 평등의 이념을 구현하면서도 대학에게 우수 학생을 변별해 낼 수 있는 방법과 자료를 제시해야 하고, 수월성을 강조하는 대학은 평등론자들의 우려를 받아들여 소외 계층을 배려하는 특별전형을 더욱 활성화하면서 동시에 수혜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적인 우수학생 선발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길 촉구한다.
그 모든 고려의 중심에 학생과 학부모와 교육현장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김호원 경신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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