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좋은 음식점에는 없는 것들

좋은 분을 오래 만난 인연 덕분으로 또다시 좋은 음식점에 다녀왔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분이 좋아하는 '납작한 지붕' 아래 있는 아담한 식당인데 유기농 한식 백반과 만두가 주식단이다.

한 시간 남짓 가서 점심 한 상을 잘 먹고 돌아온 뒤 며칠 동안 그 밥상이 잊히지 않았다.

다른 식당에 가면서 그 식당의 여러 좋은 면모가 드러난 탓도 있다

그 식당은 이름부터 특이했다.

'저녁바람'이 들어가는 아리아의 제목인데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에 나오는 여성 2중창이다.

식당 이름으로도 이런 게 하나쯤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다른 곳에 식당을 내면서 이런 이름을 본뜨려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요즘 식당에서 유기농 농산물을 가지고 음식을 해내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이 식당의 경우 부근의 농장에서 주인이 직접 농사를 지었다는 게 다르다면 다를까. 이처럼 중요한 '근거(根據)'가 있음에도 이 식당에서는 자신들의 음식이 덮어놓고 유기농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불가능하다.

작은 조기가 구워져 나오는데 조기는 유기농으로 지을 수 없으니까. 명란이나 김 같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유기농은 아니지만 유기농 소채를 직접 재배해서 내는 그 정성으로 시장에서도 성심껏 고를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는 한다.

믿음을 주기는 낡았지만 깨끗한 식탁이나 잘 배치된 소품, 오래된 서까래나 들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식당은 2인분 이상만 주문을 받아서 만두도 먹고 싶고 백반도 먹고 싶은 두 사람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만두를 맛보기로 따로 접시에 담아서 내주는 것으로 낙착되었다.

왜 1인분은 안 되고 2인분이어야 하는지 두고 봤더니 반찬이 2인분용 그릇에 나왔고 모자라면 보충을 해주되 남는 것은 가차없이 버리기 때문이었다.

1인분은 반찬 그릇에 놓자니 적어 보이고 보통으로 담으면 필경 남을 것이다.

특히 한식의 경우 밑반찬이 많고 모자라는 것을 못 견뎌 하는 우리네 심성 때문에 남는 음식이 많게 되어 있다.

남는 음식은 위생이나 상도에 비추어 당연히 버려야 할 것이지만 이 당연한 원칙이 정말 당연히 지켜지는지 의구심을 품어온 것도 사실이었다.

일개 손님 주제에 불심검문을 할 수도 없고 그러려니 하기에는 찜찜하고.

정작 내가 감명받은 것은 그 식당에 없는 것들 때문이었다.

우선 텔레비전이 없었다.

종업원과 손님을 불고하고 눈길과 관심을 빼앗는, 그 가정적이고 친근하고 집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지만 식당을 식당답지 않게 하면서 어느 식당에나 흔히 있는 그 물건이 없었다.

그렇다고 식당 주인이 좋아하는 노래, 아니면 식당 주인 생각에 손님들이 좋아할 것 같은 노래가 스피커에서 시끄럽게 흘러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 음악에 맞춰 흔들고 뛰는 아이들도 없었다.

들리는 소리는 수저와 그릇 부딪치는 소리, 옆자리의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정도의 대화였다.

낭비도 없었다.

싸다고 해서 중국산 참기름을 아무 데나 많이 쓰지도 않았다.

음식을 필요 이상으로 인심 좋아 보이게 많이 주는 일도 없었다.

일단 식당 안에 들어온 손님에게 식구처럼 대하는 태도는 물론 없었다.

일단 들어온 손님은 '집오리'인 줄 생각하고 절대 그냥 나갈 리 없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태도가 생긴다.

지나가는 청둥오리, 비오리, 흰뺨검둥오리를 향해서는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하지만 정작 와준 집오리는 식구처럼 텔레비전이나 보고 앉아 있으라는 식이다

이런 대접을 받고 나서 다시 안 가면 그만이지만 이런 곳이 너무 많아서 나처럼 돌아다니는 곳이 많은 오리는 망각과 인내 없이는 밥 먹기도 힘들다.

돌아오는 길에 원조 간판 여러 개가 나붙은 '먹을거리촌'을 지나치게 되었다.

시골 음식을 식단으로 내세우는 비슷비슷한 식당 이름 앞에 '등록 원조' '3대째 원조' '본당'이라는 흥미로운 낱말이 난무하는 가운데 얌전히 세워져 있는 자그마한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시골○○은 분점이 없습니다.

' 있는 것을 자랑하기보다 없는 것을 긍지로 삼는 식당이 많으면 이 땅 오리들 행복하리라.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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