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늦둥이 아빠 배진덕의 얼렁뚱땅 살림이야기-무심한 아들의 변명

저희 어머니는 혹여 당신으로 인해 남이 피해 입지 않을까, 신세지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저희 집에 들르실 때도 김치 담아갈게, 간장 된장 가지고 갈게 하시며 나름대로 명분을 내세우십니다. 그냥 막내 손자, 손녀 보러 아무 때나 오시면 될 것인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저희 형제는 물론이고 손자 손녀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별나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애정 표현에 저 또한 불편해 한 적도 있고 지금도 가끔은 그러한 어머니의 애정 표현에 불만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어머니는 저희 집에 오시면, 마치 우리 부부가 손자 손녀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지 의구심을 가지고 계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난달 말쯤 딸애가 감기를 앓다가 다 나아갈 무렵 큰애가 감기에 걸려 콧물과 기침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어머니가 오셨지요. "이 따뜻한 봄날에 애가 감기에 걸렸느냐"고 말씀하시다가도 "아직 쌀쌀한데 내복도 입히지 않고 밖에 내보내니 애가 감기에 걸리지"하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를 하시며 우리 부부를 나무라셨습니다. 본가로 돌아가서도 걱정이 되셨던지 아침, 저녁 큰애의 안부를 묻는 전화까지 하시더군요.

어머니는 소위 옛날분이라 늦게 본 손자를 손녀보다 훨씬 귀여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터울이 얼마 되지 않는 딸애로 인해 아직 아기나 마찬가지인 큰놈이 어머니 사랑을 제대로 못 받는다고 생각하시는 어머니는 큰놈에 대한 우리 부부의 처우가 항상 염려가 되시는 모양입니다. 가끔씩 큰놈을 볼 때마다 "살이 빠져 이놈 볼이 홀쭉해졌다. 밥은 제대로 먹이나" 하시는 반면 딸애에게 분유를 먹이면 "계집애가 살찌면 곤란하다"면서 육아에 대해 차별적인 잔소리를 늘어놓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어머니도 지난해 제가 둘째로 딸애를 보자 아들보다 딸애가 훨씬 좋다고 하시며 제 아내를 격려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평생 저희 삼형제에게만 온갖 애정과 열의를 가지고 세상 모든 딸을 비하(?)하면서 살아오신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하시니 순간 어머니도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동시에 저를 포함한 삼형제가 얼마나 어머니에게 무심했으면 저렇게 말씀하실까 하는 마음에 저의 불효를 돌이켜보게 되더군요.

사실 제 생각에도 어머니와 같이 딸 없이 아들만 둔 부모들은 평균적으로 딸을 많이 둔 부모에 비해 철에 맞는 옷을 해 입을 줄도 모르고 자식이 자주 외식도 안 시켜드려 푸대접을 받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아들을 보다가도 한 번씩 '땡깡'을 피울 때면 "내가 네 덕보겠냐" 하며 아이에게 핀잔을 주게 됩니다.

이제 8개월 된 딸애는 볼에 젖살이 오르고 배밀이도 하고 아빠의 말에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한창 귀엽습니다. "할마시요! 아들, 딸 다같이 잘 키우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정작 당신 노년이나 어떻게 하면 즐겁게 보낼 것인지 생각하소."

변호사 jdb208@hanmail.net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