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영화> '혈의 누'

'번지점프를 하다'의 김대승 감독의 두 번째 영화인 '혈(血)의 누(淚)'는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한 사극 스릴러물이다

19세기 조선의 한 외딴섬. 종이를 만드는 제지소의 운영으로 번창해가는 이 섬에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도 대단히 참혹한 방식이다.

또 그에 앞서 원인 모를 화재로 조공용 종이가 가득 실린 배가 불타버린다.

한양에서 수사관이 파견된다.

'과학수사'를 내세우는 냉철한 원규(차승원 분)는 섬을 지배하고 있는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그 실체 파악에 나선다.

그 핵심에는 마을 사람들의 묵인하에 억울하게 참형을 당한 한 가족의 사연이 놓여있다.

사극의 특성상 조금이라도 허점이 보이면 영화가 대단히 허술해보이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에는 캐스팅, 의상, 대사, 로케이션, 미술 등 곳곳에 지뢰가 놓여있다.

그런 면에서 '혈의 누'는 합격점을 무난히 넘어선다.

영화는 나름의 치밀한 고급스러움으로 관객을 정성껏 맞이한다.

여기에 사극과 스릴러의 결합이 별다른 누수 없이 잘 어울렸다.

조선 후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온몸으로 껴안은 영화는 자칫 스릴러에 함몰되기 쉬운 유혹을 떨치고 무게중심을 잘 잡았다.

서서히 균열이 생기는 신분 질서와 그 사이를 비집고 꿈틀대는 자본주의 사상, 그리고 당시의 '마녀사냥' 구실이 됐던 천주교도 등의 설정이 맞물려 돌아가는 속에 안경, 종이, 도르래 등의 장치가 시대를 흥미롭게 대변한다.

또한 영화는 고전적 액션의 신기원을 열었다.

제지소 내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CG에 기대지 않고 오직 제지소 내 각종 도구와 장치를 이용해 전개된다.

할리우드 영화로 익숙한 부비 트랩의 묘미가 조선시대 제지소에서 펼쳐지는데 그 재미가 상당하다.

이런 '기본'을 바탕으로 영화는 주인공 원규 캐릭터의 변화를 심도있게 포착했다.

김대승 감독은 원규의 공명심과 자부심이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 수치심과 배신감으로 변하는 과정을 세밀화를 그리듯 표현해내고 있다.

4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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