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봉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고향의 봄을 그리워하는 노래가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고향 같은 전원에서의 생활을 꿈꾼다. 그러나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교육 및 문화적인 혜택에 소외된다는 느낌이 아닐까.
달성군 가창면 오동(오리마을) 최성호(66)씨 집은 전원생활을 즐기면서도 도심에서 가깝다는 이점이 있다. 신천대로를 타면 15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 가창댐의 넘실거리는 물이 눈앞에 보이고, 앞산이 내려와 부챗살처럼 펼쳐져 눈이 즐거운 풍경으로 가득하다.
최성호·홍경임(60)씨 내외는 6년 전 오리마을에 들어와 노년의 여유로움을 서로에게 선물했다. 이들의 집자랑은 하루가 모자란다. "아침에는 새 소리에 눈을 뜨고, 밤에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지요.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먹다보니 10년은 더 젊어진 것 같아요." "도심의 일터에서 생긴 스트레스가 집에만 오면 확 풀리지요. 텃밭을 일구고 정원을 손질하다보면 신선의 삶도 부럽지 않지요."
대지 120평에 건평은 30평. 꼬마 전원주택이다. 하지만 이들의 집에는 집주인의 정성이 넘쳐난다. '집은 평생 짓는 것이다'라는 최씨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올해는 정원, 내년에는 텃밭, 그 다음해엔 정자를. 6년 동안 집을 다듬어가는 재미에 세월 가는 줄도 모른단다. "전원의 삶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일단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이 노년의 여유로운 삶을 선물하지요."
2층으로 된 집은 규모가 작지만 올망졸망하다. 집주인의 공간 활용에 대한 아이디어가 곳곳에 숨어있는 것. '거실과 방은 무조건 넓어야한다'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뜨렸다. 일반적으로 누워 있는 주택이 아니라 서 있는 주택이다. 보는 즐거움 즉 지루함을 없애기 위함이다 "넓은 방과 거실로 집안을 대부분 차지하게 만들면 금세 실증을 느끼게 되지요. 조금은 복잡하게 보이겠지만 입체적으로 여러 공간을 다양하게 만들어놓으니 눈이 즐겁습니다. 살아있는 집이지요."
최씨가 자랑하는 이 집의 백미는 오후의 저녁풍경. 서쪽 하늘에 지는 해가 산에 걸려 있는 황혼의 경치는 혼자 보기엔 아까울 정도다. 이런 로맨틱한 풍경을 집안에 끌어들이기 위해 서향으로 집을 지었다. 대청마루 벤치에 앉아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다보는 노부부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오후 5시부터 집의 즐거움이 시작된다"는 홍씨의 말이 이해가 된다.
마을과 산, 그리고 물이 훤히 내다보이는 거실의 조망도 일품이지만 이 집의 명당은 2층 방이다. 천창을 두개나 내 매일 밤 매혹적인 달과 별빛을 초대하고, 정원이 내다보이는 창은 잠을 이룰 수 없게 만든다. 실용성을 강조한 독일식 전원주택의 장점을 고스란히 담았다.
정원에 살고 있는 갖가지 꽃과 분재들은 대부분 사철나무다. 담장에도 아이비를 둘렀다. 한겨울에도 푸른색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한 주인의 배려. 또 연못과 정자가 호젓이 자리해 분위기를 띄운다. 정원 땅을 평평하게 만드는 대신 골프장을 연상하듯 조그마한 동산을 만들어놓았다. 지루함을 못 견디는 집주인의 성격이 정원에도 그대로 묻어있다.
다른 전원주택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공간을 이 집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유럽풍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지하 공간. 지하로 통하는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조그만 거실과 화장실, 그리고 방이 반긴다. 간소한 침대와 약간의 가구로 이뤄진 지하 세계는 무척 이색적인 풍경이다. 간혹 손님들이 찾아오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주인 내외와 손님의 사생활을 철저히 보호하기 위해 지하에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문을 따로 낸 점은 탁월하다.
도심에 있으면서도 강원도 산골의 멋을 내고 있는 최씨·홍씨 내외의 삶은 유유자적(悠悠自適)이라는 네 글자로 요약된다. "집 앞 텃밭에서 기른 고추, 배추, 파, 상추를 먹고 아름다운 자연들과 함께 사는 우리의 삶이 바로 웰빙 아닌가요."
사진=박순국편집위원 tokyo@imaeil.com
◇정용의 500자평
대구지역 전원주택지의 시작이라면 달성군 가창면 오리를 꼽을 수가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인 대구이기에 전원주택이 다른 지역에 비해 늦을 수밖에 없었다.
앞산, 대덕산, 팔공산, 와룡산 등이 근거리에 있으니 다른 대도시보다는 전원에 대한 삶의 욕심이 덜할 수밖에 없다. 이런 대구에서는 전원주택지로 욕심나는 지역이었으니 가창 오리(양지)는 도심 속 산골마을로 대구지역의 최고의 전원마을임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비슬산 줄기를 타고 오다 산성산 아래 부챗살처럼 펼쳐진 오리, 안산은 최정산이 있고 가창댐의 넘실거리는 물도 눈앞에 보인다. 최성호씨는 대구시민들이 앞산이라 부르는 산성산을 북쪽으로 업은 오리 마을에 노년의 삶의 공간을 마련하였다.
구획 정리되지 않은 마을에 자연 그대로 생긴 모양위에 집을 지었다. 그것이 멋스럽다. 긴 고구마 같이 생긴 땅에 집을 짓고 한단 낮은 토지에는 텃밭을 만들었다. 보통 서쪽에 집을 짓고 남쪽이나 동쪽에 정원을 만드는 것이 보통인데 서쪽에 깊은 정원을 만들었다.
"청룡산에 저녁의 해가 걸려 넘어가는 광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서쪽에 정원을 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서산에 지는 해를 보기 위함입니다."
황혼의 시간에는 동네 한 바퀴를 돈다는 최성호씨는 전원에 흠뻑 빠져 산다. 그린벨트 내의 주택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상황에 지하, 1층, 2층을 작지만 쓸모 있게 집 주인의 편의에 의해 설계하여 품안에 있는 주택을 짓는 지혜가 돋보인다.
'나의 살던 고향' 같은 오리마을에 지인들과 옹기종기 모여 사는 최성호씨의 삶은 모두의 꿈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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