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연록색일까, 푸른색일까. 아니다. 합천 황매산의 봄은 붉다. 세상 봄꽃들이 다 이곳으로 올라와 색깔을 더했다. 마지막 봄의 몸부림이라도 되는 듯 철쭉들이 화려하다. 황매산으로 올라간 봄을 좇아가는 등산길도 예사롭지 않다. 수직암벽에 뿌리를 박은 소나무, 바위 틈새에서 어렵게 꽃을 피워낸 철쭉도 봄의 은혜다. 그렇다면 봄도 필시 황매산의 한 봉우리인 모산재를 넘었을 터다.
봄이 오른 흔적을 따라 모산재를 오른다. 소금강산이랄 만큼 온통 바윗길. 웅장한 수직암벽과 그 위의 아기자기한 바위들. 나른함을 느낄 틈이 없다. 네 발로 기어오르고, 수직 철계단을 오르고, 밧줄을 타고 오르고, 바위산 정상에 오를 때까지 긴장의 연속이다. 그러니 조심조심 천천히 올라야 할 길이다. 서둘러 오르려해도 그럴 수 없다. 바윗길은 두 사람이 함께 갈 만큼 넓지 않다. 가만가만 앞사람을 따라갈 뿐이다. 자칫 녹록하게 보고 서둘다가는 위험에 빠진다. 그래서 모산재를 오르는 길은 인생을 닮았다.
신기하리만큼 절벽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부지기수다. 이들은 흙이 없다고 탓하지 않는다. 그저 바위 속으로 파고들 뿐이다. 누워서 크는 소나무. 자기를 낮춰야만 살 수 있는 환경을 잘 안다. 주어진 분수에 맞게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간다.
모산재에 올라서서는 반드시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켜야 한다. 이때까지 암릉의 스릴을 맛봤다면 이제부터는 철쭉의 반란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모산재를 지나면 딴판이다. 바위는 간 곳 없다. 붉은 물감을 뚝뚝 떨어뜨리고 지나간 듯 철쭉이 반긴다. 수더분한 꽃들이다. 하지만 능선에 올라선 순간 아! 탄성이 쏟아진다. 바윗길을 오르느라 팽팽히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한순간에 탁 풀어진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분홍의 물결. 모산재를 오르며 단단히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면 몸을 주체할 수 없을 판이다. 철쭉 터널을 지나면서도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할 길이 없다. 그렇다. 어차피 또 1년을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는 봄. 이번 기회에 암릉의 스릴에 취하고, 철쭉의 반란에도 맘껏 취해 보자.
글·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사진·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사진: 철계단을 지나 모산재를 향해 바위 등산로를 오르는 산행객들. 이맘때 황매산은 암릉산행과 철쭉산행을 겸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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