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실직 딛고 창업…내일 향해 "파이팅"

염색가공업체 SFB

"회사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눈 앞이 깜깜했어요. 지금은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 저절로 흥이 납니다.

이제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 같은 아픔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

최근 섬유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문을 닫는 회사가 많아졌다.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평생을 섬유업에 몸바쳤지만 이제 어디 한 군데 찾아갈 회사도 없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난 3월 대구지역 실업률은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5.2%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전국 실업률은 오히려 0.1% 감소했다.

하지만 실직노동자들이 다시 뭉쳐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곳이 있어 업계에서는 훈훈한 소식으로 전해지고 있다.

◇갑작스런 폐업소식

2일 기자가 찾은 서대구공단 내 염색가공업체 SFB(Super Fomal Black). 여느 공장과 달리 직원들 얼굴은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이들이 '싱글벙글' 일하는 이유는 소중했던 직장을 잠시나마 잃었다가 다시 일을 시작했기 때문. 이 공장은 지난달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만난 도기환(52)씨는 "다시 일할 줄 꿈에도 몰랐다"라며 "처음엔 우리끼리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는데 한 달 만에 정상화된 모습을 보니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곳 직원 37명은 모두 동국화섬 출신이다.

1월 25일 회사 측에서 갑작스럽게 공장 폐쇄를 해 120여 직원들은 직장에서 쫓겨났다.

워크아웃 중인 동국무역이 최근 적자 사업분야인 동국화섬에 대해 직장폐쇄를 단행한 때문이다.

갑작스런 폐업 소식에 본사에 항의 방문도 가고 폐업철회도 요구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현장간부직원 5명이 뭉쳐 회사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퇴직금과 그동안 모아뒀던 자금을 5명이 공동출자해 현재 공장을 임대하고 예전 동국화섬에서 사용하던 기계도 되사왔다.

무엇보다 이들이 다시 모인 이유는 '일자리' 때문이다.

이 회사 윤준수 공장장은 "갑작스런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옛 동료에게 일자리를 마련하고자 뜻을 모았다"라며 "같이 일했던 직원들이어서 호흡이 잘 맞아 준비기간 없이 곧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모두가 주인인 회사

이 회사는 출발 때부터 '한 배를 타자'고 다짐했다.

개인의 이익보다 사람을 믿고 시작했기 때문에 회사직원 모두가 주인이다.

현장출신 직원들이 주축인 관계로 관리자와 현장직원의 벽은 전혀 없다.

사장도 직접 현장에서 일을 하고 경리직원들도 현장이 바쁘면 달려간다.

수익을 높이기 위해 인원을 최소화한 이유도 있지만 앉아서 일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 회사의 신념이다.

그래서 사무실은 비어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월급도 출발은 모두 똑같이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경력과 상관없이 직급별로 월급을 동일하게 받기로 한 것. 그래서 이 회사 직원들의 주인의식은 남다르다.

이 회사 홍준계 대표이사는 "모두 아픔을 겪고 새출발을 했기 때문에 직원들의 주인의식이 남다르다"라고 말했다.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섬유경기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모험을 한 것은 바로 제품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이 회사는 중동으로 수출하는 차도르를 심색(深色)가공하고 있다

이 회사 창업자들은 동국화섬에서 가장 인정받는 분야인 심색가공만 가져와 특화하면 분명 제품경쟁력이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안정적인 중동시장을 노릴 수 있고 아직 중국 등 후발국가와의 경쟁에서 충분히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심색가공분야에서 '강소기업'으로 자라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지금의 경쟁우위도 3년 내 따라잡힐 것이라고 예상했다.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당장 급여보다 수익의 대부분을 기술 투자로 돌릴 생각이다.

홍 대표는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 기술 투자를 게을리하면 언제 또다시 문을 닫을지 모릅니다.

외형을 부풀리기보다 기술 개발과 비용 절감을 통해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변신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재교기자 ilm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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