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골수염·간경화 투병 이경식씨

불행의 사슬… "아빠 일어나, 빨리"

이 가족에겐 불행이 한번 시작되더니 멈추지 않았다. 빚에서, 가난에서 벗어나려 애쓸수록 이자는 불어났고, 궁핍은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가장이 결국 쓰러졌다. 부인은 남편 병간호를 위해 두 피붙이를 친정어머니(80)에게 맡긴 채 병원에서 살고 있었다. 밀린 병원비만 벌써 1천만 원이 넘었다.

"남편이 5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디스크 증세를 보인다고 했어요. 무뚝뚝해도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 자기 몸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를 썼어요. 단단하고 야무졌던 이 사람이 이렇게 병원에 누워 꼼짝도 못하고 있는 것이 꿈같기도 하고..."

부인 김순자(38)씨는 답답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측은한 눈빛을 남편에게 보냈다. 병실에 비스듬히 누워 어렵게 잠을 청한 남편 이경식(42'달성군 구지면)씨는 잠자는 순간에도 고통스럽다며 얼굴을 찌푸리며 통증을 견디고 있었다.

흉추 추간판전위(디스크)로 지난 2월 수술을 받은 이씨는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겨 골수염이 됐다. 뼈까지 병균이 스며들어갔다. 거기다 간경화와 콩팥 이상 증세가 잇따라 나타났는데 혼자 힘으로 견디기에는 그 고통이 너무 크다.

이씨는 전남 담양에서 비닐하우스 보온덮개 제조 공장을 운영했다. 3년 전 누전으로 보이는 불이 나 공장이 통째로 사라지고 말았다. 밤 11시부터 시작된 불은 오전 9시가 되도록 꺼지지 않았는데 곧 3억여 원의 빚을 받기 위한 채권자들이 들이닥쳤다. 시가, 친정의 몇 평 안 되는 논, 밭을 모두 팔았다. 피치 못해 심지어 조상묘를 경매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외지였기 때문에 사고자 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고 아주 헐값에 바삐 팔았지만 이자는 무섭게 늘어났다. 그때 해운(6)이가 세 살, 승주(5)가 두 살이었다.

"알음알음으로 사글세 50만 원하는 방을 얻어 대구까지 흘러왔는데 이미 실패한 그이를 모두 모른 체하더군요."

남편은 이를 악물고 빚 갚기에 혈안이 됐다. 애들 돌볼 시간도 없이 이 부부는 공사장, 음식점, 편의점 등지에서 주야로 일했다. 부인은 한 봉지에 3원 하는 단순작업으로 한 달에 20만 원도 벌지 못했다. 남편은 조금씩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통증을 견뎌냈다고 한다.

"밥 좀 먹어야지 여보. 먹어야 낫지'''." 항생제 치료를 받고 있는 남편은 목으로 음식을 삼키기 힘들다며 기침을 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못 먹여서 속상한 부인의 눈가에서 금세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해운이와 승주는 아빠 옆에서 꼼짝도 않고 보챘다. "아빠 빨리 집에 가자. 빨리 일어나. 응?" 요즘 남편 이씨는 조금씩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어제 있었던 일을 오늘 일이라 우기고 밥시간에 이미 먹었다며 화를 내기도 한다. 금세 잊고, 화를 내고, 축 늘어지는 모습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화낼 때가 낫지, 대낮에 숨죽이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러다 곧 죽는 거 아닐까' 두려워 계속 깨울 수밖에 없거든요."

부인은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12시간 이상 일하고 4만 원을 벌어 일요일 저녁에 온다. 이 가정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도 몰라 수입도 없으면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의료급여도 2종일 뿐이다.

고생시킬까봐 결혼하자는 말도 못하고 속앓이만 한 정직한 남편을 잃고 싶지않은 부인은 두 아이를 꼭 안고 아빠가 일어나기만 기다리고 있다.저희 '이웃사랑'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 골수염, 간경화로 하루종일 누워있는 아빠 곁에서 재롱을 떠는 해운이와 승주. 이채근기자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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