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예술 중에서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것은 알타미라 동굴의 '바이슨'이다. 스페인 칸타브리아지방 산티아나에서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고고학자들은 완벽한 조작이라고 확신했다. 쓰고 지우는 과정 없이 한 획으로 그어 나간 힘찬 선들이 만들어낸 이 걸작품은 일생을 연마한 거장이 아니고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예술의 경지를 보여 주었기 때문. 미개한 원시인으로 치부된 선사시대 인류들은 원근시점에서 탈피, 피카소와 같은 다(多)시점 기법을 사용했으며 연속 동작으로 애니메이션을 표현하는가 하면 암컷을 두고 싸우기 직전의 수사슴 동작을 정확하게 묘사했다. 동굴은 고흐 미술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최고의 컬렉션을 자랑하고 있다.
1978년 발명한 감마선에 의한 연대 측정법으로 수많은 선사시대 매장 유물들의 연대를 직접 측정한 저자는 직접 조사했거나 답사한 내용을 중심으로 선사시대 예술에 관한 학계의 연구 현황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또 선사시대 유럽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인류 미술의 시원을 '원시 미술'이라 부르는 경향을 거부하며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다.
선사시대에 이룩한 인류의 찬란한 업적을 단순하고 조야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선사 예술이 발견된 당시 풍미한 다윈 진화론의 낡은 관습일 뿐이며 선사 예술의 일급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자연의 활력과 생명력이 수만 년 전 동굴 벽화 속에 살아 숨쉬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우선 선사 예술의 보고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에 있는 라스코 동굴 벽화와 관련된 그동안의 연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동굴 벽화의 제작 과정을 명쾌하게 복원해내고 있다. 동굴 벽화를 그린 인류는 동물을 3차원 입체로 표현하기 위해 '반 비틀림 화법'을 사용했고, 방사성 탄소에 의한 연대측정과 라스코 동굴에서 260㎞ 떨어진 지역에서 발견된 라 테트 뒤 리옹 동굴의 발견으로 벽화가 약 1만7천 년 전 마들렌 문화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연대를 둘러싼 논란이 종식된 과정 등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저자는 선사 예술의 초기 발굴사와 당시 연구자들의 활약상도 소개한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라스코 동굴 벽화와 같은 작품을 남겼다는 사실이 지금은 상식이 되었지만 발견될 당시에는 사정이 그렇지 못했다. 따라서 선사 예술을 발견한 선구자들은 발견이 인정받기까지 세상의 숱한 편견과 싸워야 했다.
그렇다면 선사 예술을 창조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선사 예술이 형성된 기간은 길지만 전성기를 이룬 사람들은 크로마뇽인들이다. 이들은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동굴 벽에 단번에 선을 그어 달려드는 들소의 힘찬 근육을 표현했는가 하면 안료와 나뭇재를 입에 넣고 씹어 침과 섞은 후 동굴 벽에 뿜어내는 방식으로 네거티브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저자는 크로마뇽인의 발견과 기원, 생활, 그리고 그들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를 분석하고 있다.
이와 함께 '왜 현대 거장들의 작품과 맞먹는 걸작들이 한줄기 빛도 스며들지 않는 지하 깊숙한 동굴 속에 숨겨져 있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해석도 제시한다. 발굴 초기 그림에 등장하는 사슴과 들소가 사냥의 성공을 비는 주술적인 소재라는 것. 그런데 최근 선사인들의 식생활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림의 주제와 사냥감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결국 동굴벽화는 그 아름다움을 위해 그려졌으며 동굴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전시하는 선사인들의 갤러리였다는 설이 유력해졌다.
그러나 저자는 선사시대 사냥꾼들은 동굴 속의 매력에 빠져 동굴을 일종의 성역으로 삼았고, 그 곳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신성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었다고 결론짓는다. 424쪽, 2만 원.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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