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의 힘'을 믿습니다.
소리는 사물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게 하거든요."
하헌목(43) TBC 편성제작본부 FM팀 PD. 그의 얼굴엔 넉넉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1989년 불교방송에서 라디오 PD를 시작한 이래 16년째 라디오에만 매달려 온 그다.
그 때문일까. 사람과 소리에 빠져 살아온 그의 미소 뒤엔 열정과 집요함이 숨어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고 하죠. 영상은 사람들이 자신의 편견을 잣대로 사물을 판단하게 하지만 오디오는 80% 이상 자기가 상상한 대로 느낀다는 점이 매력적이죠."
그는 상복이 많은 사람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출품한 뒤에 오는 기다림이 즐겁다"는 말처럼 그는 기다림의 대가를 심심찮게 얻었다.
남들은 한 번 받기도 힘든 '한국방송프로듀서대상'을 2번이나 받았고 '이달의 PD상'과 '프로그램 기획상'은 여러 차례 수상했다.
특히 1999년 '제42회 뉴욕 페스티벌'에서 '역사와 사회' 부문 은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인으로는 최초였다.
'뉴욕 페스티벌'은 TV 및 광고, 필름 페스티벌로 프로그램의 작품성, 내용의 표현, 창의성, 작품의 효과 등을 전세계 TV방송사에서 선정된 심사위원단이 평가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페스티벌. 그가 출품한 '100년을 살아온 사람들'은 지난 100년간 격동기였던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100세가 넘는 노인 3명을 만나 가슴 속 깊은 이야기를 담아낸 인터뷰 다큐멘터리였다.
"합천에 살고 계시던 할머니가 기억에 가장 남아요. 결혼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원폭으로 아들을 잃고 딸은 북송됐다며 평생의 한을 절절이 풀어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
방송이 천직이라 생각하던 그에게도 고비는 있었다.
1995년 답답했던 직장과 쳇바퀴처럼 돌아가던 무미건조한 생활을 견디기 힘들었던 그는 무작정 미국행을 감행했다.
잊었던 영화의 꿈을 다시 찾기 위해서였다.
3년간 미국에 머물며 LA와 플로리다 등지에서 다큐멘터리를 공부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2001년 국악과 자폐아들의 음악치료를 접목한 프로그램 '푸른 꿈 싣고가는 소리나라 여행' 기획안이 방송위원회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것. 원래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기획됐지만 TV에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에 직접 촬영과 연출을 맡았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다큐멘터리 작품이 됐죠." 담담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친다.
그는 집요한 사람이다.
청소년 자살예방 프로그램인 '생명 사랑을 위한 청소년 특별기획 2부작'을 제작할 당시 그의 침대맡에는 늘 메모지가 어질러져 있었다.
자다가도 갑자기 생각이 떠오르면 일어나서 메모를 해야했기 때문. 조카가 대학 입학 후 자살하자 장례식장에 직접 만든 '몰래 마이크'를 들고 가 취재하기도 했다.
"가슴이 아프면서도 '얘기가 된다'(취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형님은 몇 번씩 쓰러지시는데 마이크를 들고 녹음하는 제 자신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지더군요. 그 후로 한동안 정말 힘들었죠." 이후에도 그는 청소년 자살 방지 캠페인을 벌이고 홍보물을 제작했다.
또 동성로에서 '친구야 이제 그만'을 주제로 자살 방지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그는 "단순히 프로그램 제작으로 끝내지 않고 나름대로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계기와 메시지를 던졌다"고 자평한다.
하 PD는 이 프로그램으로 제17회 한국방송프로듀서대상 라디오 지역부문상을 수상했다.
"라디오는 대중과 밀착한 매체입니다.
쌍방향으로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는 매체는 그리 흔치 않죠. 때문에 라디오 프로그램은 좀더 적나라해도 괜찮다고 봐요." 요즘 그는 라디오 뮤지컬을 기획 중이다.
포항의 한 대안학교 학생들이 직접 자기들의 이야기를 노래에 담아 뮤지컬로 만드는 과정을 다큐로 담아낼 계획이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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