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수많은 무훈을 세워 '전쟁영웅'으로 불렸으나 고집스럽고 괴이한 행동으로도 유명했던 데이비드 해크워스 예비역 대령이 지난 4일 멕시코의 한 병원에서 암으로 숨졌다고 뉴욕 타임스가 6일 보도했다.
향년 74세.
타임스에 따르면 불과 20세의 나이로 한국전에 지휘관으로 참전했고 베트남전에서는 최연소 대령으로 활약하면서 두개의 무공십자훈장 등 91개의 훈장과 메달을 받을 정도로 혁혁한 무훈을 세운 해크워스 예비역 대령은 현역 신분으로 미군의 베트남전 수행방식을 비판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1931년 캘리포니아주 베니스에서 출생한 해크워스 예비역 대령은 생후 5개월만에 양친을 잃고 할머니 밑에서 성장해 선원으로 일하던중 15세 때 '가짜 아버지'에게 돈을 주고 입대연령에 도달했다는 보증서를 받아 육군에 입대했다.
그는 한국전이 발발하자 자원 참전해 '울프하운드(이리사냥개) 특공대'로 불리는 의용군 부대를 지휘했다.
한국전 투입 미군 가운데 최연소 지휘관이었던 그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도 전선을 떠나지 않는 불굴의 용기를 보였고, 1965년 베트남 전선에 최초로 투입된 미군 공수부대의 일원이었으며 이후에는 공격용 헬기 부대 지휘관이 됐다.
그는 베트남에서도 많은 무공을 세워 전설적인 전쟁영웅이 됐는데 한 전투에서는 2천500명의 월맹군 병사들을 몰살한 반면 아군 사망자는 25명에 그치는 대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해크워스는 병사들의 성병 감염 위험을 제거한다는 이유로 부대 주변에 매춘업소를 운영하는 등 기이한 행동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가 이끈 헬기부대는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소재가 됐다.
해크워스는 1971년 TV에 출연해 "미군은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하고 있고 장교들은 게릴라전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베트남전에서 이길수 없다"고 비판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이 파문 이후 군법재판에 회부된 끝에 결국 자진 퇴역했다.
(뉴욕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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