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고디국

일요일 아침, 시장을 다녀오신 어머니가 고디(다슬기)를 한 소쿠리 사오셨다.

오랜만에 고디국을 끓여먹자면서 고디를 삶아줄 테니 바늘로 속을 까놓으라고 하신다.

일요일 오후 모녀는 거실에 앉아 늦봄의 햇살을 받으며 바늘로 고디살을 조심스레 빼냈다.

"오늘 고디는 유난히 싱싱하고 좋네. 너거 아부지가 좋아했을 낀데…." 고디국을 끓일 때마다 어머니는 아버지 이야기를 빼놓지 않으셨다.

고디국을 유난히 좋아하셨던 아버지. 아버지는 고디국이 드시고 싶을 때마다 직접 시장에서 고디를 한 소쿠리 사오셨다.

그리고는 당신 손으로 직접 삶아서 살까지 발라 내놓으셨다.

그리고는 어머니에게 한마디. "시원하게 함 끓이 내봐라."

어머니는 배추와 정구지(부추)를 깨끗이 씻어놓고 쌀과 들깨, 마늘도 곱게 갈아놓는다.

그리고 큰 솥에다가 잘 까놓은 고디살을 넣고는 한참을 끓인다.

어디에서도 맛보기 힘든 어머니만의 고디국은 그렇게 완성이 된다.

그러면 아버지는 며칠 동안은 반찬 투정을 하지 않으셨다.

봄기운에 입안이 까칠할 때도 고디국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을 너끈히 비우셨다.

경상도 양반이 혼자서 상을 차려 식사를 하실 만큼 그 국을 맛나하셨다.

어머니의 고디국은 외할머니께 전수받은 것이라고 한다.

봄 개울에 살던 고디들의 살이 오통통 오르면 그걸 주워서는 큰 가마솥에다 배추시래기를 넣고 국을 끓이셨단다.

"너거 외할매 고디국이 진짜배긴데…." 이 또한 고디국을 끓일 때마다 어머니가 잊지 않는 말씀이다.

지난주 내내 우리집 저녁상에는 고디국이 올라왔다.

끓이면 끓일수록 더 진해지는 국물맛 때문에 먹고 또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국을 끓이는 어머니의 뒷모습. 언젠가 나도 내 딸과 함께 고디국을 만들며 내 어머니 이야기를 할 날이 있을까?대구MBC구성작가 이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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