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한자-*爲國*獻身 軍人之本(위국헌신군인지본)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

안중근 의사(義士)가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 경술(庚戌)년 3월 뤼순(旅順) 감옥에서 마지막으로 쓴 글이다. 안 의사는 옥중 생활 5개월 동안에 남긴 *遺墨(유묵)이 200여점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그 중 발견된 것이 70여 점으로 많은 진품이 안중근 기념관에 소장되고 있다.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러시아 재무(財務) 장관 코코프체프와 회담(會談)하기 위해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사살(射殺)하기로 결심한 후 동지 우덕순과 상의하여 승낙을 얻고 조도선, 통역 유동하와 함께 이강의 후원을 받아 행동에 나섰다.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는 하얼빈에 도착하기 전에 차이자코우역에 잠시 멈추기로 되어 있었다. 차이자코우역에서 우덕순과 조도선이 1차 암살을 *試圖(시도)하고 안중근은 하얼빈을 맡기로 되어 있었다. 우덕순과 조도선은 차이자코우역에서 이토를 암살하려 했지만, 일본 헌병들이 밖에서 문을 잠그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오전 9시.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경례를 받는 이토 히로부미를 조용히 따르고 있었다. "탕! 탕! 탕!"

세 발의 총성이 역을 뒤흔들었다. 현장에서 일본 고위 관리들에게 중상을 입힌 후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하늘을 향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곧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뤼순(旅順)의 감옥에 수감되었고 1910년 사형이 *宣告(선고)되었으며, 3월 26일 형이 집행되었다.

안 의사가 밝힌 *義擧(의거)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은 한국 독립 전쟁의 한 부분이요, 또 내가 일본 법정에 서게 된 것도 전쟁(戰爭)에 패배하여 포로(捕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 자격으로 이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한국 의군 참모 중장의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 한 것이니 만국 공법(公法)에 의해 처리하도록 하라."

하얼빈 역에 울린 그의 총소리는 침략자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을 꿰뚫으면서, 동시에 이천만 민족을 잠에서 깨우는 위대한 소리였다.

@ 한자풀이

*爲(위) : 위하다 *獻(헌) : 바치다

*遺墨(남길 유, 먹 묵) : 죽은 이가 남긴 그림이나 글씨

*試圖(시험할 시, 그림 도) : 무엇을 시험 삼아 꾀하여 봄. 또는 꾀한 바를 시험해 봄

*宣告(베풀 선, 알릴 고) : 1. 중대한 사실을 선언하여 알림 2. 공판정에서 재판관이 판결을 당사자에게 알림

*義擧(의로울 의, 들 거) : 정의를 위하여 사사로운 이해타산을 생각함이 없이 일으킨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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