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극일기'는 초절정 상업 오락영화"

총제작비 90억원 규모의 블록버스터 '남극일기'는 남극 도달불능점을 향해 전진하는 6명의 남극탐험대 이야기다. 그러나 예상을 뛰어넘어 영화는 커다란 외형과는 달리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깊게 파고든다.

자연과 맞서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 승리 드라마를 기대한다면 오산. 영화는 끝없이 긴 터널을 뚫고 들어가는 암울한 느낌이다. 한마디로 90억원짜리 실험영화인 셈. 그러나 이에 대해 임필성 감독(33)은 "초절정 상업 오락영화"라고 자신했다. 그렇다. '남극일기'는 적어도 천편일률적인 블록버스터들과는 분명 차원이 다른 영화다.

10일 '남극일기'의 시사회를 앞두고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임필성 감독을 만났다. 단편, 독립 영화계의 기대주로 급부상했으나 '남극일기'를 준비하면서 5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했던 그는 "관객이 극장을 나서면서 좋은 문학작품을 읽은 느낌을 갖고 돌아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왜 남극 도달불능점인가.

▲이 영화 속 남극은 SF 영화의 화성, 목성과 다를 게 없다. 일반인들이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어야 했다. 와중에 계속 흰색(눈)을 봐야하고 낮만 이어진다는 설정이 영화적으로 재미있을 것 같았다.

찍으면서 내내 너무 어려운 도전을 했구나 싶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하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다. 덧붙여 남극점은 이미 많은 사람이 다녀갔기 때문에 그보다는 남극을 무보급으로 횡단하는 것이 의미있어 보였다. 자료를 찾다보니 남극에 '도달불능점'이 있었고, '도달불능점'이라는 그 이름이 매력적이었다. 또 지구 관측 사상 가장 낮은 온도가 기록된 지점이기도 하다.

--무서운 느낌이 강하다. 성공한 것인가.

▲의도했던 바다. 묵직한 얘기를 운반하면서 장르적인 점을 제일 활용하고 싶었다. 무서움에다가 슬픔과 감동이 더해지길 바란다. 욕망의 끝에서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을 그리고 싶었다. 개봉 후 어떤 반응을 얻을 지는 모르겠다.

굉장히 새롭고 실험적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상업영화의 테두리 안에서 독특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천편일률적인 영화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고 누군가는 다른 영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난 5년의 시간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떤가.

▲꿈 같은 시간이었다.(옆에 앉아 있던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는 "나이트메어!"라며 웃었다). 처음 데뷔 준비할 때는 류승완씨 등 많은 이들이 데뷔를 안 했던 때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들이 다 데뷔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거기서 느끼는 묘한 감정이 있었다. 제일 힘들었던 때는 2003년 싸이더스에서 만든 '지구를 지켜라'가 흥행에 참패했을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내 영화는 영원히 찍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척 힘들었을텐데 어떤 확신으로 버텼나.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굉장히 새로우면서도 나름대로 드라마틱하고 보편적인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잘할 자신이 있었다.

--말 그대로 흰 눈밭이 이어진다. 어떤 색을 표현하고 싶었나.

▲흰색을 오래봤을 때 느끼는 지루함, 사람을 살짝 미치게 하는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 또 똑같은 흰색이지만 석양 빛이 섞인 부드러운 오렌지빛의 흰색, 그린이나 블루가 섞인 흰색, 깨끗한 흰색 등 미세한 차이를 입체적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뉴질랜드 로케이션 등 쉽지 않은 촬영이었다.

▲전 과정이 예상보다 거의 최악으로 어려웠다. 그나마 배우 운은 아주 좋았다.

--영화 내내 지켜보는 시선은 누구의 시선인가.

▲남극의 시선이다. 남극은 이 영화의 7번째 주인공이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주인공들이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기 시작하면서 남극이 이들을 서늘하게 지켜보는 모습이 점점 어떤 형태를 갖고 다가온다. 도형(송강호 분)의 환상 속에 등장하는 아들의 모습이 남극 자체일 수도 있다.

--음악감독으로 가와이 겐지를 캐스팅한 이유는.

▲그가 작업한 '공각기동대'와 '링'을 보면서 이상적인 작곡가라 생각했다. 단순히 멜로디 위주의 음악이 아니라 영화의 정서를 뒷받침해주는, 음악과 음향의 경계에서 새로운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다행히 시나리오를 보냈을 때 바로하겠다고 답했고, 기대만큼 음악을 잘 해줬다.

--쉽지 않은 영화다. 관객이 어떤 느낌을 받길 바라나.

▲어떻게보면 굉장히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요즘에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이기도 하다. 좋은 문학작품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를 바란다. 관객이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겨놓았다. 약간 덜 친절하지만 그런 영화도 필요하지 않을까.(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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