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대구의 상징은 사과와 섬유였다. 지역을 먹여 살린 가장 큰 효자산업이었던 섬유는 지금 천덕꾸러기가 되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3천400여 업체에 7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지역 섬유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연 7조4천억 원 생산에 25억 달러를 수출하고 있는 핵심산업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의식주(衣食住)와 관련된 산업은 영원하다. 단지 지역 섬유업계가 구조조정, 기술개발 등 변화의 흐름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오늘의 위기를 자초한 점에는 깊은 자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역 섬유업계가 중심이 돼 추진하고 있는 '대구경북 섬유클러스터 선진화 특별법'은 지역 섬유산업의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되었다. 큰 홍수가 나 집더미가 몽땅 떠내려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기둥이라도 건져야 다시 집을 지을 수 있지 않겠는가!
국제경쟁력을 가진 유망한 선도기업(Leading horse) 300~400개를 집중 육성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일본 섬유산업은 한때 수익과 규모면에서 20%대까지 바닥을 쳤지만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고부가가치 창출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오늘날 전성기를 능가하는 화려한 부활을 하고 있다.
구미에 70% 지분으로 도레이새한 합작회사를 세운, 세계 최고의 화섬업체 일본 도레이는 산지기업 70개 사로 합섬클러스터를 구축해 연매출 14조 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우리가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패배감에 젖어 있을 때 도레이는 중국의 1억 명에 이르는 부자집단을 타깃으로 한 고급화 전략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것이다.
이번 특별법 추진은 탁상공론(卓上空論)이 아니며 시행착오(試行錯誤)의 위험도 극히 적다. 이미 일본에서 입증된 성공 케이스를 벤치마킹하자는 것이다. 직편물, 염색가공 등 경쟁 우위에 있는 소재산업의 70%가 이미 클러스터화해 있는 지역 섬유산업을 패션어패럴과 연계된 이탈리아'일본식의 선진국형으로 최단시간내에 탈바꿈시키자는 것이다.
더 이상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시간을 질질 끌다가는 공멸할 뿐이다. 합병과 퇴출, 전업, 세대교체 등을 적극 추진하고 외자 유치, 섬유 벤처 창업을 지원하며 패션스쿨과 섬유전문 마케팅센터 설립 등을 통해 돌파구를 찾자는 것이다.
때맞춰 정부에서도 최근 '의류봉제산업 육성방안'을 통해 영세 봉제생산업체를 단지화하는 대규모 아파트형 봉제공장 등의 시설자금 지원, 인력양성 지원 등 다각적인 섬유 회생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번 특별법은 과거처럼 정부에 손을 내미는 보호'육성'지원 정책을 해달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섬유업계도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새롭게 설립될 '섬유투자조합'에 스스로 과감한 투자 노력을 할 때만이 정부의 공동출자 등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언제 중단될지 모르는 밀라노 프로젝트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뒷받침을 받기 위해서라도 특별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위해 무엇보다 리더십이 절실하다. 그래서 이번 특별법에는 '대구경북 섬유클러스터청' 설립을 핵심사항으로 담고 있다. 부시장급인 인천자유구역청장은 건설교통부 장관 출신이 하고 있다. 전문경영능력을 가지고 급수나 체면에 연연하지 않는, 욕 먹을 각오로 구조조정의 총대를 멜 신념 있는 지도자를 청장으로 영입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청은 지역 섬유산업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변화를 주도하고 중앙과 지방 정부, 기업, 연구소, 대학, 협회, 조합 등을 네트워크화해 효율적으로 운영할 주체가 될 것이다. 또한 이 클러스터는 외국에 진출한 업체와 타지역 업체에게도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방형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가 중심이 되어 결성될 특별법 추진위원회는 여야를 아우르는 초당적인 특별법 제정 활동 요청과 섬유살리기 캠페인, 서명운동 등을 준비하고 있으며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인 곽성문 의원은 대표발의자로서 6월 상정을 목표로 발 벗고 뛰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R&D를 강조하는 요즘,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R&D는 그 과실을 따먹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섬유는 아직도 우리를 먹여 살릴 바로 눈앞의 산업으로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섬유가 더 이상 지역경제의 주름살이 아니라 고용창출과 수출, 경제회생의 견인차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지역민 모두가 힘을 모을 때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김만제 낙동경제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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