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목격한 외국인의 증언록 전문이 11일 공개됐다.
명지대 LG연암문고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세계문학연구소 김려춘 교수가 최근 러시아 제국 외교고문서관에서 세르진 사바친의 명성황후 시해 사건 목격기를 발견해 전달했다"고 밝혔다.
사바친은 고종이 고용한 러시아인 건축기사로 1894년 8월부터 사건 당일까지 경복궁에 살았으며 사건 뒤 중국 산둥(山東)성으로 피신해 이 기록을 남겼다.
사바친은 증언록에서 1895년 10월 8일 새벽 명성황후가 시해된 시각 황후 거처 인근에서 목격한 장면을 상세히 기술했다.
그는 그러나 명성황후를 모르고 있어서 황후가 누구였는지를 밝히지는 않았다.
연암문고 관계자는 "사바친의 증언록은 한·일 당사국을 제외한 외국인이 현장을 보고 남긴 유일한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증언록 가운데 명성황후 시해 장면.
"새벽 5시 궁궐 공격이 시작됐다.
북동문 밖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유창한 연설로 보아 사전 연습까지 해둔 것이 분명했다.
궁궐을 지키던 위병들은 사방으로 달아났다.
나는 황후전(건청궁)에 있는 두 개의 문 앞을 지키는 5명의 일본인 보초병과 장교 한 사람을 봤다.
동시에 마당에는 훈련대 소대와 오동나무 문장이 들어 있는 일본 옷이나 양복을 입은 20~25명가량의 일본인이 있었다.
일본인에 붙잡힌 내가 황후전 마당에 서 있을 때, 일본인들은 궁녀 10~12명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끌어낸 뒤 창문 밖으로 던져 마당으로 떨어뜨렸다.
궁녀들 중 그 어느 한 사람도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 않는 완전한 침묵 상태였다.
황후전 마당에 머문 15분의 마지막 순간 일본인 5명이 시뻘게진 얼굴로 사납게 외치면서 황후전 안으로 뛰어 들어가 어떤 궁녀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달려 나왔다.
"
(연합)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