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국적 포기 행렬

한참 전에 방영된 영화 '명자'아끼꼬'쏘냐'는 주인공의 이름 변천사를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는 바로 이 나라의 지난날 자화상에 다름 아니라 할 수 있다. 사족을 달지 않아도 아끼꼬는 명자의 일본 이름, 쏘냐는 소련식 이름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 영화 속의 명자는 사할린의 북한 국적인이므로 우리나라에 돌아오지 못하는 비극의 여인이기도 했다. 또 한동안 우리는 북한의 탈북자를 보면서 실감했듯이, 숱한 비극과 갈등의 귀결점이 바로 국적 문제임을 새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런데 요즘 국적 문제를 두고 또 다른 일들이 불거지는 세태다. 고위 공직자의 자격 여부를 검증하는 청문회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게 이중 국적 문제다. 그 여부는 애국심을 가름하는 잣대로 인식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법을 교묘하게 악용하면서 권리는 누리고 의무는 내팽개치는 '얌체족'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하니 분명 문제다.

◇ 최근 국적 포기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2일 1건에 불과했으나 국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 4일 이후 급증 추세다. 6일에는 97건, 7일 47건, 9일 69건으로 늘었으며, 10일엔 세 자릿수로 껑충 뛰어 무려 143건이라니 놀랄 일이다. 대구에서도 요즘 하루 20여 건의 문의 전화에다 12명이나 신청한 모양이다.

◇ 더욱 기가 차는 건 국적 포기 신청자 중 95% 가량이 남성이라는 점이다. 이번 국적법 개정은 원정 출산 등으로 이중 국적을 가진 남성이 18세 이전에 우리 국적을 포기함으로써 병역 의무 기피하는 걸 막는데 초점이 맞춰졌으며, 다음 달부터 시행된다. 그러나 국적 포기 사유가 대부분 병역 문제 때문이고, 신청자의 41.1%가 학계 인사이며 40.6%가 상사원이라는 사실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는지….

◇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교육 문제나 취업난 때문에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경우도 있을 게다. 새로운 희망이나 비전을 찾아 떠나는 데는 비난할 수만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그러나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빠진 '얌체족'들 때문에 이런 바람이 확산돼서야 되겠는가. 인터넷에도 비난의 글들이 줄을 잇지만, 특히 병역 기피 등을 위한 '노블레스 오블리제 부재' 행렬은 우리를 더욱 참담하게 하지 않은가.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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