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법과 의학사이-장롱 속 숨진 아이

지난해 12월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사건이 대구에서 발생했다.

선천성 근육영양장애(muscular dystrophy)로 추정되는 희귀질병으로 혼자서는 앉지조차 못하는 4세의 남자 아이가 영양실조로 사망한 채 장롱 속에서 발견됐다.

북한에 식량원조까지 하는 나라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사람들은 아이의 부모를 위로하고 격려했으며 성금까지 보냈다.

그런데 아이의 부검에 관여한 소아과 교수는 아이의 영양실조는 아이가 갖고 있던 질병 자체의 자연적인 경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방치로 아이가 필요한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교수의 말에 의하면 부모가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갔다는 의미다.

수사기관은 이러한 내용의 부검결과에 의해 아이를 보호 양육할 법적 의무가 있는 부모가 아이가 아프고 굶는 줄 알면서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음식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의 부모를 구속했다.

아이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상태에서 부모는 딱하기 짝이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부모의 구속사실이 알려지자 위로와 격려를 보내던 사람들은 이제는 부모를 비난하면서 성금을 돌려달라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부모는 아이를 끔찍이 사랑했고 특히 아버지는 그 동안 새벽부터 저녁 늦도록 인력시장에 나가 노동을 하면서 가족의 생계비와 아이의 치료비를 마련해 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이가 사망한 것은 숨지기 수개월 전부터 음식을 주어도 먹지 못했고 치료비가 없어 아이를 큰 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사망하기 전 아이를 무료로 진료해왔던 동네 소아과 의사는 죽은 아이가 척수성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이라는 난치의 희귀질병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소견에 따르면 척수성근위축증이란 심한 근육장애로 환자가 앉지도 서지도 못하며 제1형일 경우는 2세 전 사망률이 70%, 제2형일 경우 대부분 10세 전에 사망하는 질환이다.

현재로서는 치료방법이 없는 병으로 그 증상이 심하면 근육수축으로 음식을 삼킬 수 없어 영양섭취를 하지 못한다.

환자는 굶은 사람과 같이 신체가 마르다가 결국 사망하는데 아이는 이 중 2형으로 추정된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영양실조로 굶어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영양실조의 원인이 부모의 방치 때문인지 아이의 질병 때문인지에 따라 부모의 법적책임이 달라짐은 물론이다.

지금으로서는 부검에 관여한 교수의 말이 맞는지 아니면 어릴 때부터 아이를 진료해온 동네의사의 진단이 맞는지 알 수 없다.

부모가 치료비가 없어 사랑하는 아이를 잃게 되고 사회적 비난은 물론 법적 비난까지 받게 됨은 안타까운 일이다.

얼마전 법원은 여러 사정을 참작해 아이 아버지를 석방해 남은 아이들을 보살필 수 있도록 했다.

남은 가족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들에게 위안과 격려가 있었으면 한다.

임규옥(변호사·법의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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