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훈(申世薰·64·의성)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에게 인터뷰를 청하니 대뜸 커피 맛이 좋다며 서울 대학로의 '학림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했다.
'학림'은 때묻은 나무 바닥이 삐걱대고 곧 다다미가 무너져 내릴 듯한 70년대 풍으로 젊은이들의 첨단 소비 문화의 상징이 돼버린 대학로와는 왠지 분위기가 동떨어진 '섬'이다.
약속 시간을 20분이나 넘겨도 오지 않아 연락하니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커피를 시켜 맛보라'고 권한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선율도 좋다.
그에겐 꿈이 많았다.
30세전까지 시인, 40세전까지 의사, 만년엔 봉사와 정치… 그런데 22세에 시인이 됐고 지금도 시인이다.
고교를 졸업하고 의대에 진학하려 했으나 돈이 많이 든다며 부모가 반대했다.
1년여간 문학 공부를 하다가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연극영화과라면 풍각쟁이라고 집에서 반대할 게 뻔해 국문학과를 지망한다고 거짓말했다.
연영과를 택한 것은 연극과 시가 하나라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읽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는 연극이 곧 시였다.
국문학과 강의는 주로 청강했다.
몽타주와 오버랩 등 연극영화 기법이 시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에 주목했다.
대학생 때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강과 바람과 해바라기와 나'가 바로 몽타주 기법을 적용한 시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하며 민조시(民調詩)를 개척했다.
민조시란 3-4-5-7조의 정형시. 우리 말마디와 장단가락을 민조시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
민조시는 '한 사상'이 배경이다.
신 이사장은 "한은 일반에 알려졌듯 슬프고, 괴롭고 그런 게 아니다"면서 "크다, 많다, 하나다, 으뜸이다, 우두머리다, 한울타리다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순우리말도 '한하게'(많이) 만들었다.
'풀머리/깨어있는/동녘산자락 청시울가에,/홀로/나/잠드네,/달머리/잠빛 밝은/서녘강허리 금물목샅에./나 홀로/눈뜨네.'
이 민조시에서 풀머리, 청시울가, 달머리, 잠빛 등 시어는 그가 만든 것이다.
'살섞는다'는 말도 그가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문협 이사장으로서 그는 지역 문학의 활성화란 화두도 잡고 있다.
'지방'이란 낱말 대신 '지역'을 쓴다.
지역 문학이 활성화돼야 한국 문학이 발전한다는 신념도 갖고 있다.
영락없이 지방분권주의자다.
너무 바빠 노래방이나 이발소, 목욕탕 등에 안가고 컴퓨터와 자동차 운전도 안한다는 그는 "하루에 두세권씩 책 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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