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2년 8월 11일 9세에서 15세 어린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상해에서 배에 올랐다. 목적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조기유학 프로젝트가 중국에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유학 기간 15년, 선발 인원은 매년 30명. 1872년부터 1875년까지 청나라 정부는 네 차례 걸쳐 모두 120명의 국비유학생을 파견했다.
그들은 미국 문학의 거장 마크 트웨인과 교분을 맺었고 남북전쟁 영웅인 미국 대통령 그랜트의 접견도 받았다. 또 벨의 전화 발명과 에디슨의 손에서 유성기가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 몇 년 후 그들 가운데 50여 명이 하버드'예일'컬럼비아'MIT 등 미국 명문대학에 입학했다. 조타수 중원야오는 예일대 조정부 핵심 멤버로 활동했으며 일부는 야구부를 결성했다. 대학의 문서보관실에는 지금도 그들의 입학허가증, 사진, 약력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조기 유학 프로젝트 기획자는 룽훙이었다. 중국인 최초의 미국 유학생(예일대 졸업) 룽훙은 26세의 나이에 프로젝트를 추진해 43세인 1871년이 되어서야 리홍장으로부터 프로젝트를 비준받았다. 예일대학은 1876년 그에게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수여했으며 예일 교정에는 그의 초상화가 걸려 있어 찾는 이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19세기 서구는 근대화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증기기관, 전기와 전화를 비롯한 근대 문명 이기들이 끊임없이 발명되었다. 특히 1876년 건국 100주년을 바라보던 미국은 그 중심에 있었다. 청나라 정부에 1년 앞서 일본은 대규모 정부시찰단을 세계 각국에 파견했다. 이 파견단에는 50명의 유학생도 포함되어 있었다. 메이지 천황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9세짜리 여자아이를 몸소 전송하기도 했다.
반면 조선은 흥선대원군이 10년 세도(1864~1873)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쇄국정책을 호령하고 있었다. 중국과 일본이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고자 바다를 건너 동분서주하고 있을 즈음 조선은 문을 걸어 잠근 채 안에서 곰삭고 있었다. 나라 곳곳에는 척양비(斥洋碑)가 세워지고 있었다. 1872년 조선은 없었다.
청나라 정부의 조기유학 프로그램은 아쉽게도 국내 정세의 변화로 10년 만에 종말을 맞으면서 학생들은 학업 도중 본국으로 소환되고 말았다. 그러나 당시 조기유학을 떠난 아이들은 서양의 앞선 군사력과 과학기술을 배우고 돌아와 향후 중국 근대화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랑뚠옌은 청나라 외무대신이 되었고 황카이자는 1904년 세계박람회서 중국관 부감독을 맡았으며 치이사오지는 천진 북양대 총장을 지냈다. 팡뽀량과 탕위안잔은 중국 전신 사업을 일군 선구자였으며 잔텐유는 중국 최초로 자체 건설한 서릉 철도를 완성시켰고 탕사오이는 중화민국 초대 총리, 량루하오는 청나라 우전부 부대신에 올랐다.
청나라 말 양무운동의 와중에서 태어나 청나라 왕조의 자기개량을 위해 만들어진 이 유학생 집단은 중국 역사의 광활한 무대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선발된 학생들의 평균 나이가 겨우 12세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들은 유미유동(幼美幼童)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억되고 있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조기 유학 열풍에도 시사하는 점이 있다. 조국 근대화를 위해 기획되었던 청나라의 조기유학과 우리나라의 조기유학은 큰 차이가 있다. 유학을 기획하는 사람이나 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유학 본연의 목적에 부합할 수 있는 자세를 갖고 성과를 도출해 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빈약한 정보를 얻기 위해 너무도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는 셈이 된다. 지금 우리 사회 조기유학 열풍은 아이의 적성과 능력을 무시한 채 욕심을 채우려는 부모와 교육이 제대로 서지 못한 현실 등에 맞물려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사람만이 유일한 재산'인 우리로서는 사람을 길러내기 위해 유학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사회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저자는 홍콩, 상해, 뉴욕,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오스틴, 하트포트 등으로 뛰어다니면서 땀으로 유미유동들의 발자취를 복원해 냈다. 이 책은 지난해 5월 중국 CCTV에서 5부작 다큐멘터리로 방영되었고 DVD로도 출시됐다. 412쪽, 1만6천500원.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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